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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는 나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06 17:10

수정 2017.07.06 17:10

[여의나루]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는 나라'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는 나라(land of lousy options)'.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다룬 미국 언론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글귀였다. 조지타운대 빅터 차 교수가 과거 쓴 칼럼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차 교수의 글을 읽어보면 이 말도 그의 창작품은 아니다. 경험 있는 외교관들은 북한을 '다루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해 왔다는 게 차 교수의 얘기다. 하지만 미국 언론의 반응은 단순히 다루기 어렵다는 것 이상이다. 영어로 라우지(lousy)는 안 좋은, 엉망인, 형편없는 등의 뜻을 갖는다.
한마디로 북한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일종의 좌절감의 표현이다.

미국 정부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국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건장한 미국 청년이 북한에 억류된 끝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상황이다. 무언가 대응을 해야 마땅하다. 당장 북한을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하거나 제한적 폭격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대응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재앙의 서막이 될 수 있다. 선제타격론 등은 따라서 공갈포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없다. 이미 수십년 동안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아 온 북한이다. 그들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을 통한 압박이 유일한 수단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중국 역시 자국의 이해관계가 우선이다. 북한이 흔들릴 정도의 제재를 가함으로써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에는 북한의 일관된 전략이 놓여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오고 있다. 한·미의 정권교체나 정책적 변화와 관계없는 일이다. 햇볕정책이나 빙하정책(?)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핵과 미사일 개발이 단순히 정권유지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북한 정권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른바 '달빛정책'에 호응해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고 한다. 대북문제에 있어 우리가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에 앉게 되었다는 말도 나온다. 착각이라는 것은 북한의 태도가 입증한다. 전격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우리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참석차 출국하는 문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음이 "무겁다"는 발언도 있었다. 한·미 정상회담 후 귀국 시 밝았던 표정과 자신 있던 어투와 대조적이다. 북한의 대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대북정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히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하에 일관된 우리의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목표로 서두른다면 또다시 냉온탕을 오가는 정책만 나올 것이다.

독일 통일의 근간이 된 동방정책은 중도좌파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작했다. 반대파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는 동방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며 통일의 길을 열었다. 우리가 독일식 통일을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브란트처럼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통일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함께 모여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자신의 대북구상을 강조하거나 "다음 대통령이 통일대통령이 되게 하겠다"는 발언은 성급하다. 진보도 보수도 동의할 수 있는 일관된 대북정책을 함께 마련하자는 호소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도 북한에 대한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다는 인식부터 하고 볼 일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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