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착한 에너지는 없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특히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공사 계속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에 맡긴다는 결정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에너지 전문가 400여명이 '제왕적 조치'라며 비판 성명을 내고 지역주민과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는 소송전도 마다치 않을 태세다. 시공사들도 위법 소지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두 손 들고 반겨야 할 미국의 환경단체는 오히려 반대 성명을 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이 탈원전 정책에 도달하는 데 25년, 스위스는 33년이 걸렸다. 한국은 대통령 말 한마디로 비전문가인 시민배심원단이 3개월 만에 결정하겠다니 뒷말이 안 나올 리가 없다. 한수원이 13일 이사회를 열어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 중단' 여부를 논의한다지만 결론은 뻔해 보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정부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간 심의를 거쳐 작년에 허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원전 공사를 법적 지위도 없는 시민배심원단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시민 뒤에 숨은 꼴이다. 국민들에게 안전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취지가 옳다고 절차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20%' 공약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비중(2015년)은 1.5%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이 비중을 높이려 애썼지만 맘 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어느 것 하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다. 신재생에너지로 1400㎿급 원전 1기를 대체하려면 태양광은 서울 면적 4분의 1, 풍력은 1.4배에 해당하는 부지가 필요하다.

미국 환경운동단체 '환경진보'의 마이클 셸런버거 대표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자력이 100%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전문가들이 '원전은 악(惡)'이라는 편견을 깨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일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는 서한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미국에서 10년 넘게 원전폐쇄 반대 운동을 펴왔다. 2008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환경 영웅'에 선정됐다.

급격한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보다 먼저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과 대만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은 급격하게 탈원전을 추진하다 지난 1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직전의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흐리고 바람 없는 날이 길어지면서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평소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은 탈원전 속도를 늦추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문재인정부가 모델로 삼은 대만은 이미 탈원전을 포기했다. 지난해 6기의 원전 가운데 5기의 운전을 멈췄지만 지난달 3기를 다시 돌렸다.
전력예비율이 1%대까지 떨어지는 등 블랙아웃을 우려해서다. 세상에 안전하면서 싸고, 환경오염도 적은 착한 에너지는 없다. 원자력은 무조건 위험하고 신재생에너지는 깨끗하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