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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공무원들 올 여름휴가 갈 수 있을까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1 17:07

수정 2017.07.11 17:07

[차장칼럼] 공무원들 올 여름휴가 갈 수 있을까

10여년 전쯤 대중소기업의 납품단가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정부는 대기업, 중소기업이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정부 고위 관료들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날 때마다 중소기업 납품단가를 깎지 말라고 부탁했다. 대기업 CEO들은 매번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납품단가 인하 요구는 지속됐다.
원인은 간단했다. 임원과 중간 관리자급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개인 평가를 잘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시스템과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의 연차휴가 소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이 넘는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여름휴가도 7~8일 정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대통령의 휴가가 본인들의 휴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일부 공무원의 반응은 이렇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새 정부가 들어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로 쌓였다. 지난해에도 여름휴가를 못 갔는데 올해도 물 건너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여름휴가 소리도 못 꺼내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한창 바쁜 시기에 휴가 이야기를 꺼내면 이상한 사람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지금 휴가계획을 세우라고 해도 여름철 휴가지는 이미 다 예약이 끝나 갈 곳도 마땅히 없다. 여름휴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초부터 휴가계획을 짤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대통령이 연차를 다 소진하겠다고 밝힌 의지가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휴가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일년에 한 번 여름휴가 5일을 가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일·가정 양립은 먼 나라 이야기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방안으로 일·가정 양립을 중요한 이슈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시대에 농민적 근면성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뒤떨어진 사고다. 조직의 최고위층이 변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간관리자 이상이 변해야 한다. 쉽지 않은 방법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선임자가 개입할 수 없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해마다 연초에 휴가계획을 받고 반드시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휴가를 안 가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도 그렇고 각 부처 장관, 기관장들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 일·가정 양립을 강조한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 우리 조직 구성원들이 휴가를 철저히 가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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