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최저임금 1만원’ 구호서 벗어나야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3 17:03

수정 2017.07.13 17:03

[기자수첩] ‘최저임금 1만원’ 구호서 벗어나야

'9570원과 6670원.'

지난 1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근로자 측과 사용자 측이 제시한 1차 수정안이다. 무려 3000원 차이가 난다. '1만원 vs. 6625원'이라는 초안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최저임금 결정은 이미 법정시한(6월 29일)을 넘겼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종 확정고시일(8월 5일) 20일 전인 오는 16일까지 최종 합의안을 도출해야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 문제는 후보 간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최저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언제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지는 후보마다 의견이 달랐다.

대선 이후 2개월이 흐른 지금, 정책적 대안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최저임금 1만원'은 하나의 구호가 됐다. 이 구호로 서민들은 둘로 갈라졌다. 최근 알바천국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는 데 대해 알바생 69.3%는 '긍정적'이라고 답했지만, 고용주 82.7%는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알바생은 "최저임금 7000원으로는 필수적 생활비를 벌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하고, 자영업자들은 "우리도 서민인데 최저임금 1만원을 맞춰주면 우리가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을과 을의 싸움"이라고 지적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을과 병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익위원들의 적극적인 중재로 오는 16일까지 최종안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 때문에 알바생과 고용주 간의 심리적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을과 을의 싸움'은 매년 일어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노동 문제는 근로시간, 고용형태 등 근로환경 전반에 걸쳐 있다. 크게 보면 원청-하청, 유통대기업-가맹점주 간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은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근로자, 고용주 측은 최소 5년 단위의 로드맵과 정책대안을 내놓고 논의해야 한다. 큰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근로시간과 비정규직 제도 개선 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소모적 갈등이 반복될 뿐이다.
반복되는 '을을 갈등'의 피해자는 결국 또 '을'이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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