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통상' 공무원들을 믿는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18 17:26

수정 2017.07.18 22:33

[차장칼럼] '통상' 공무원들을 믿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관성이 있다. 상대국에 대한 공세에선 더 그렇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미 FTA가 최악의 끔찍한 협정"이라고 했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을 결집해 지지율을 지키는 전략에서 한.미 FTA는 미국 자동차산업 침몰, 실업자 양산, 백인 중산층 붕괴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효과적인 재료다.

'미국 우선주의'가 트럼프의 가치다. 빼앗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되찾겠다는 것인데, 그의 경제관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팩트(사실)를 따질 것 없이 현상에서 한.미 간 무역은 불공정하다'는 트럼프식 프레임이다. 일자리를 빼앗긴 것도, 소득이 줄어든 것도 모두 FTA 때문이라는 얘기다. 프레임은 단순할수록 힘이 세다. 게다가 이런 프레임이 진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 트럼프가 극단적인 발언을 하고 참모진이 완곡하게 재해석하는데, 결국엔 그의 방향대로 가는 식이다. 상대국에 '거칠게' 압박한다. 이런 거래의 기술은 특히 통상 문제에선 제법 통한다. 중국(환율조작국 지정)도 일본(TPP 탈퇴)도 그랬다. FTA가 미국 입장에서 자동차(FTA 5년간 37% 증가), 지식재산권(2015년 기준 60억달러) 등 상품.서비스 교역에서 상당한 이익을 가져간 유리한 협정이라고 우리가 연일 주장해도 트럼프 귓전에서 맴돌 뿐이다. 일관되게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두배로 늘었고 한국이 미국기업 진출에 장벽을 쌓고 있다"며 그는 프레임대로 말한다. 100% 팩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우리도 일관된 게 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확대해석 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이건 정부의 오판이다. 안이하게 판단했고, 준비도 안됐다(통상교섭본부장 공석).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힘을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바로 '축적의 시간'이다. 2006년 1월 우리는 세계 최대 부국 미국과 FTA 협상을 선언했고, 10여년간 수십차례의 협상을 거듭하며 지금의 FTA를 완성(2011년 국회 비준)했다. 이후 우리는 터키(2013년 발효), 호주(2014년), 중국.베트남.뉴질랜드.캐나다(2015년), 콜롬비아(2016년)와 FTA를 체결했다. 지금은 중미(3월 가서명), 이스라엘.에콰도르(협상 중), 메르코수르.멕시코(협상개시 합의)와 협상 중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경험의 축적이자 '통상 선수'들의 세대교체다. 10여년 전 'FTA 초보선수' 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적어도 한.미 FTA 개정을 염두에 두고 8개월 이상(작년 11월 8일 트럼프 당선) 준비했을 것이라고 본다.
전략적 무대응, 저자세는 이제 버릴 때다.

미국을 상대해 구체적이고 당당하게 대응하자. '개정이 맞니, 재협상이 맞니' 하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 그건 공무원들에게만 의미 있지, 국민들은 아니다.
국민들은 믿는다 '통상'공무원들을. 그것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말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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