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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경제부총리도 모르는 증세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3 17:11

수정 2017.07.23 17:11

이럴거면 '사령탑' 왜 두나.. 절차 건너뛰다 뒤탈 날라
한달 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김 부총리가 가운데 서고 장 실장과 김 위원장이 양쪽에 섰다. 세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회동에선 "김 부총리가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점이 강조됐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증세처럼 중요한 경제 현안에서 김 부총리는 외곽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정책실장을 두고, 내각에 정치인과 캠프 인사를 다수 기용할 때부터 부총리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된 듯하다.

김 부총리는 취임 후 줄곧 법인.소득세 명목세율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증세에 솔직해지자"고 말했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율까지 거론했다. 이튿날 문 대통령은 "어제 (추 대표가) 소득세, 법인세 증세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셨다"며 "기재부에서 충분히 반영해서 방안을 마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로써 증세는 문재인정부의 확고부동한 방침이 됐다. 기재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8월 초 발표 예정이던 새해 세법개정안을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기재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예우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려면 일단 '계급'이 높아야 한다. 청와대 인사들도 부총리는 함부로 못한다. 경제장관 회의에서 장관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있으란 얘기가 아니다. 안에선 '계급장' 떼고 격론을 벌이더라도 대외적으론 한목소리를 내라는 뜻이다. 그래야 정책에 일관성이 생긴다. 이번처럼 부총리를 건너뛰면 앞으로 시장은 부총리가 아니라 실세 장관, 집권당 대표,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정권 초반엔 흔히 정책이 시스템보다 인물 위주로 돌아갈 때가 있다. 탈원전, 최저임금 정책도 그런 모양새다. 원전 공사를 중단하려면 허가를 내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게 맞다. 원안위가 2년 전 재가동을 승인한 경주 월성 1호기 폐쇄도 마찬가지다. 공론화위원회나 시민배심원단은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무슨 결정을 내리든 뒤탈이 나게 돼 있다. 대선 때 민주당 캠프에서 활약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지난주 최저임금 1만원 정책에 대해 "이것을 실시하면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정부 측 예상 시나리오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증세든 탈원전이든 최저임금이든 다 정해진 절차가 있다.
공약이라고 무턱대고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증세는 경제부총리, 탈원전은 원안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기는 게 순리다.
절차를 밟지 않으면 나중에 사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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