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방산비리 왜 척결 못했나] 기업 대다수가 정부주관 방위사업 의존… 비리수사때 이의 제기 못해

문형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3 17:40

수정 2017.07.25 13:10

방산비리합수단, 77명 기소… 재판 후 약 30% 풀려나
정부의 방산비리 척결 '보여주기'였을 뿐 지원은 없어
문재인정부, "비리 척결.수출 사업 육성" 등 방산 개혁
[방산비리 왜 척결 못했나] 기업 대다수가 정부주관 방위사업 의존… 비리수사때 이의 제기 못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10월 29일 국회 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말한 것의 배경은 일명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척결'의 서막이었다. 박 대통령의 국회 발언 한달 뒤 100여명의 인력이 투입돼 대규모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그러나 방산비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방산비리 기소자 약 30%가 무죄

방위산업 관계자는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 당시 방산비리합수단은 군검찰, 경찰, 검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돼 약 1년간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재판에 넘겼다"면서도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을 비롯해 기소된 사람의 30% 정도가 풀려난 걸로 안다. 진짜 방산비리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이처럼 합수단의 수사와 재판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군과 방산업계는 수사에 대한 문제점들을 조심스레 지적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방위산업 수출규모는 2006년 2억5000만달러에서 2015년 35억달러로 10년간 13배 증가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민간기업의 수출규모에 비하면 작다"면서 "대다수 기업들이 정부주관 방위사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에 정부의 헛기침에도 깜짝 놀라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수출의 규모만으로는 큰 성장일지 모르겠지만 이익구조는 낮다"면서 "수출보다 업체 대다수가 국내 방위사업에 중점을 두다보니 정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방산비리 수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정부의 방산비리 척결은 '보여주기'였을 뿐 투명성과 수출지원을 위한 조치를 한 적이 없다"면서 "복잡한 무기도입절차와 하이테크의 집약체인 방산장비에 대한 전문성 결여 등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방위산업이 항상 비리를 양산해 내는 산업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미 수사가 끝난 협의를 새롭게 포장해 수사하는 것도 예삿일이 되고 있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STX계열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해군 소령 출신으로 방위사업비리 척결에 힘쓰고 있는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합수단 수사 당시 새로운 방산비리사건으로 주목받았지만 사실은 2009년 군검찰이 수사했다가 조용히 묻힌 사건이다. 수사 당시 이명박정부 차원에서 비호가 있다는 말이 많았다"며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합수단이 구성되면서 파견된 군검찰 단장이 정옥근 전 총장 사건을 그대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방산 역사 긴 선진국 경험을 보라…무리한 사업추진

한 군사학과 교수는 "방위사업과 방위산업을 구분 지어야 한다"며 "선진국에 비해 짧은 방위산업이 빠른 발전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 없는 성공만을 강요하는 국내 정서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역사 속 황당 방산사건이 많다. 때론 비리, 때론 사업과정과 기술력 문제로 인한 결함들을 겪고 세계 방위산업은 발전해왔다"면서 "1937년 미국 군수사령부는 감자보다 당도가 낮은 초콜렛을 허쉬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민간 초콜렛 경기를 띄운 긍정적 효과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군은 2차대전 중반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폴란드 망명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FP45라는 초소형 권총을 '빠르고 싸게'라는 조건으로 약 100만정을 GM사와 계약했지만, 총을 쏴도 독일군이 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이 권총을 일본군이 노획해 사용하자 미군들은 FP45가 일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싸고 빠르게'라는 시장논리를 방위산업에 적용하면서 국내 방산업체들은 '무한경쟁'에 돌입했지만 경쟁력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또 다른 군사학과 교수는 "방위산업은 원가를 국가로부터 보전받는 안전성은 있지만 마진율이 높은 매력적 사업은 아니다"라면서 "민간사업이 10% 정도의 마진율이라면 방위사업은 3%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는 '싸고 빠르게'를 요구하고, 국민들과 언론은 '결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방위산업의 극단적 어려움을 꼬집었다.

■문재인정부 방산 개혁 구상은

문재인정부의 방위산업정책은 노무현정부가 2006년 방산비리 근절을 위해 방위사업청을 국방부 외청으로 개설했던 것처럼 방산비리 척결과 수출사업으로서 방위산업 육성이다. 실제로 국내 방산업체들이 기대를 거는 부문은 방위력 개선비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에 발표한 2018~2022년 국방 중기계획에서 연평균 8.4%의 방위력 개선비 증가율을 예고했다.

노무현정부 당시 방위력 개선비는 약 14%였다. 노무현정부의 국방개혁 2020은 수리온헬기, K-2 흑표전차, 현무-3 등의 신무기를 적극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때문에 문재인정부도 이와 유사한 구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단순 재래식무기에서 핵으로 바뀐 상황에서, 융합기술이 적용된 감시.탐지.타격 등의 무기체계에 맞는 방위력 증강과 방산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방산 일선에서는 군용으로서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데 우리 정부는 새로운 엔지니어를 투입하면 다 되는 줄 안다"면서 "정부는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방위사업청이 충분한 관리감독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aptinm@fnnews.com 문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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