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우리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희생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4 17:27

수정 2017.07.24 18:09

[기자수첩] 우리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희생

얼마 전 어느 판사와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는 '불편함'을 두고 딸과 대화를 나눈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연수차 딸과 1년간 호주에서 지냈다. 그들은 1년 동안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느림이었다. 상점은 일찍 문을 닫고 택배를 이용하면 그 사실조차 잊었을 때야 상품이 왔다.
한국에 돌아왔다. 초등학생인 딸은 오자마자 "역시 여기가 최고야"라고 했단다. 전날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바로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판사는 딸에게 한마디 했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기사들이 밤낮을 고통스럽게 일해서 우리가 조금 편해지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판사는 나에게 "우리가 얻는 편리함의 출처를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참 잔인한 것 같다"고 했다.

택배기사의 삶은 팍팍하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평균 단가는 2012년 2506원에서 지난해 2318원까지 떨어졌다. 택배 건당 800원 정도 수중에 들어온다. 여기에 부가세와 수수료를 떼고 차량 구매비, 기름값 등 나머지 모든 돈을 제한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택배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은 없다. 되레 차량 도색비나 의복비를 떼간다. 노동법을 벗어나는 초과 노동과 추락하는 택배 단가가 낳은 결론은 우리의 '작은 편리'다.

한 곳이 움푹 들어온 곳에 물을 부으면 당연하게도 물이 고인다. 패인 곳에는 물이 넘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물이 부족하다. 택배업도 이와 유사하다. 택배업은 사회의 요구를 '최전선에서' 부응한다. 수요의 물이 넘친다. 택배업은 매년 10% 이상 신장한다. 그러나 택배업에 종사하는 사업자, 실상 노동자인 그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값싸게 편리함을 얻기 때문에 택배를 거치지 않는 지역 상권은 도태된다. 클릭 몇 번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굳이 품을 팔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누리는 편리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에 빚지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의 클릭만으로 값싼 물건을 살 수 있던 이유는 택배기사가 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결과였다. 물론 그들은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처우의 적정성과는 무관하다. 택배업 신장률과 아무런 상관없이 급여는 줄고 있다.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택배기사들은 올해 초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다. 택배비가 올라도 기꺼이 지불할 것. 물이 넘치거나 부족하게 만드는 '가해자'가 되지 말 것.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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