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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권오현 부회장의 어색한 동선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5 17:09

수정 2017.07.26 09:05

[차장칼럼] 권오현 부회장의 어색한 동선

삼성전자에는 직함(職銜)에 '회장'이라는 단어가 붙는 사람은 딱 3명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권오현 부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한남동의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줄곧 병원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권 부회장이 두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2.4분기 '매출액 60조원, 영업이익 14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창립 48년 만에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하지만 지도부 공백 상태를 맞고 있다. 권 부회장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권 부회장은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인 만큼 삼성전자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부문도 직접 챙겨야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비상 상황에 놓인 삼성전자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권 부회장은 최근 외부활동이 부쩍 늘었다. '최근'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권 부회장은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것을 비롯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의 4대 그룹 회동과 일자리위원회 15대 기업 초청 정책간담회에도 연이어 참석했다. 특히 지난 18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자리 15대 기업 초청 정책간담회'에서는 재계를 대표해 발언하기도 했다. 권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면서 "신(新)정부 일자리 창출정책에 많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권 부회장의 이 같은 외부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으로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신분이기는 하지만 각종 외부행사에 불려다니며 시간을 보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타도 삼성'을 외치며 '반도체굴기'를 선언, 전 국가적으로 반도체 전쟁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난 2012년 17.7%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으나 올 1.4분기에는 3.1%로 8위에 그쳤다. 조금만 방심하면 상황이 바로 바뀌는 게 IT업계다. 이제 정부도 정치권도 권 부회장을 놔줘야 한다. 권 부회장이 있을 곳은 각종 간담회장이 아닌 삼성전자 사업장이다.


권 부회장은 연초 경기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2017년 시무식에서 "경쟁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와 함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미래 핵심기술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품 경쟁력의 기본인 품질은 사소한 문제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면서 "공정 개선과 검증 강화를 통해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정치권이 원하는 '모범답안'보다는 '품질 자부심'을 강조하는 권 부회장의 발언이 다시 듣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전용기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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