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탈원전과 에너지 안보

지령 5000호 이벤트

독일은 프랑스産 전력 수입.. 우린 고립된 섬…자체 해결해야
선무당 같은 정책실험 아슬아슬

숨이 턱턱 막히는 올여름이다. 지구온난화의 불길한 전조를 예감하는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폭염보다 탈(脫)원전.탈석탄 논란이 더 뜨겁다. 며칠 전 정유회사에서 일하는 전문가인 지인에게 들은 '에너지 강의'는 그래서 퍽 유익했다.

국제시장에서 발전용 대체에너지의 불안정한 수급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이 카타르와 러시아, 미국(셰일가스) 등 몇몇 나라에 편중된 현실을 직시하면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기저발전소로는 부적합한 게 치명적 한계임도 깨닫게 됐다. 일조량과 풍질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 탓에 늘 화력발전소 등을 콜드 리저브(발전량은 줄이되 설비는 유지) 형태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신재생에너지가 대용량 전력을 상시 공급할 기저발전을 감당하기 어려운 제약조건은 더 있다. 1GW 전력을 얻기 위해 원전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20%만 있으면 되지만 태양광은 그 15배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열섬 현상과 빛 반사로 농민들의 불만이 만만찮은 터에 좁아터진 이 땅을 태양패널로 뒤덮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풍력은? 최근 경북 영양군이 풍력발전기 추가 설치 중단을 결정했단다. 소음과 환경 훼손에 따른 주민 민원이 빗발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새 정부는 원전 안전성 확보를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였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만 보는 인상이다. 우리 원전을 전부 폐쇄하더라도 서해 쪽에 빼곡히 들어선 중국 원전은 어쩔 건가. 한국보다 기술력이 훨씬 처지는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3일 내에 한반도가 방사능 영향권이라는데…. 안전이 목표라면 중국이 한국에 면한 해안을 따라 수십 기의 B급(?) 원전을 짓는 중이라 우리만의 탈원전은 큰 의미가 없다.

원전의 안전성 못잖게 신경써야 할 게 '에너지 안보'다. 독일이 30년을 준비해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다소 위선적인 냄새도 풍긴다. '원전 부국'인 이웃 프랑스로부터 값싼 전력을 사 쓰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일.스위스가 '원전 제로'를 천명할 수 있는 것은 유럽의 송배전 전력망이 그만큼 잘 짜여 있는 덕분이다. 이에 비해 우리로선 전력수급 국제협력에 관한 한 '고립된 섬'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곧 흐지부지됐다. 대체에너지원인 LNG의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무역수지와 제조업 경쟁력에 경보음이 울리자 일본은 원전 재가동을 결정했다. '원전 제로'를 선언했던 대만도 마찬가지 사유로 손들고 말지 않았나.

탈원전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라는 대안 없는 '덜컥 수'는 무모해 보인다. 신기후체제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 원전보다 탄소를 더 배출하는 LNG발전에 오래 의존하겠다는 건가. 현 정부의 100대 정책과제에서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다는 말만 있지 이를 위한 투자재원 마련 등 구체안은 없었다. 그러고도 친환경 에너지 자립 운운한다면 '둥근 사각형을 그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형용모순이다.


그간 값싼 산업용 전기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온 우리다. 선무당 같은 정책 실험이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에너지 안보'에 큰 구멍을 낼까 두렵다. 정부는 구호가 아니라 '미래 에너지'를 만들 능력이 있음을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