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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하마평의 딜레마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6 17:09

수정 2017.07.26 17:09

[차장칼럼] 하마평의 딜레마

얼마 전 전직 금융권 고위급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제법 힘깨나 쓰던 사람이었는데, 한참 전 퇴임한 뒤로 이름이 잊혀가는 중이다. 신임 금융위원장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금융분야의 기관장 인사 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금융위원장이 정해졌으니, 슬슬 물갈이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 대강 이런 얘기들이 오갔다. 갑자기 그가 물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안 나온답니까" 무슨 의중이 있는지 싶어 쳐다봤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냥 별 뜻 없이 물어본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금융권 인사라는 게 사실 인력풀이 그리 넓지 않다.
어디에 빈자리가 생기고 후임을 정해야 할 때가 되면 주로 과거에 비슷한 자리에 앉아본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다.

매번 단골로 이름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전혀 생소한 후보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정된 사람 중에서 돌려막기 식으로 새 기관장이 선임되곤 한다. 이날 만났던 사람도 한때 금융권에서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던 고위직 출신이니 혹시 하마평으로 이름이 나오지는 않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마평의 어원을 따져보면 말을 끌던 시종들이 주인나리가 잠시 말에서 내려 볼일을 보는 동안 자기들끼리 주고 받던 뒷담화를 말한다. 주로 "자네 주인은 이번에 어디로 간다던가" "그 자리는 이미 어느 댁 나리가 가기로 했다던데" 등등 관가에 돌고 있는 인사 관련정보들이 시종들 사이에서 오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하마평이라는 게 상당히 얄궂은 면이 있다. 관가의 속설 또는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 너무 일찍 하마평에 오르면 낙마하기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예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본인이 셀프로 하마평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고위 관료들이 산하 기관장 인선을 앞두고 있을 때 일부러 언론에 몇몇의 이름을 흘리기도 했다. 기사화되면 여론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간보기를 하는 것이다.

여론이 너무 한 사람에게만 몰려 유력하다고 떠들어대면 정부에서는 부담을 느끼기 쉽다. 청와대에 누군가가 밀고 있다더라, 기재부 무슨 라인에서 이미 정해놨다더라 등등의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해당 인사는 결국 배제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하마평은 나와도 걱정, 안 나와도 걱정인 이유다.

최근에 전직 한국거래소 출신 중 몇몇 사람의 움직임이 부산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과거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인맥을 복구하기 위해 물밑에서 활동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대체로 차기 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게 여의도 호사가들의 분석이다.


한편으로는 좀 씁쓸한 기분도 든다. 현직 이사장은 가타부타 거취에 대한 말이 없는데 벌써부터 차기를 노리는 활동을 시작했다니 말이다.
고위직은 아무나 가는 자리가 아니라던데, 역시 세상은 냉정하고 비정한 곳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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