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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주례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31 17:25

수정 2017.07.31 17:25

[fn논단]주례사


현직에서 물러난 후 후배들로부터 가끔 자녀 결혼식 주례 부탁을 받는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승낙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주례사를 할 때가 되면 어떤 축하 메시지나 덕담을 해야 하나 은근히 고민이 되곤 한다.

주례(主禮)란 '예식을 주관하다'라는 뜻이다. 전통 혼례에서는 혼례 절차를 잘 알고 한문에 소양이 있는 분이 진행을 맡는다. 집회나 제례 등의 의식에서 하듯이 진행 순서가 적힌 홀기(笏記)를 읽으며 진행한다.
그러나 신 혼례식에서는 신랑.신부와 인연이 있는 분을 주례로 모신다. 종전에는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의 유명인사가 주로 맡았으나 요즘에는 은사, 목사나 신부, 직장 상사를 모시는 경향이 많다.

주례사란 신랑.신부와 내빈에게 전하는 축사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두 사람에 대한 축하와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교훈을 짧은 시간 내에 조리 있게 담아야 한다. 필자의 단골 덕담은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짜증이나 화가 날 때는 숨 한 번 크게 쉴 동안만 참아보라'이다. 주례사가 없는 결혼식도 있을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혼례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요즈음은 주례 없이 부모님 덕담으로 진행하는 결혼식도 가끔 보게 된다.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로서는 다소 형식적이고 평범한 결혼식보다는 남과는 다른 예식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몇 달 전 주례를 볼 때 주례사는 짧게 줄이고 신랑.신부로 하여금 '사랑의 맹세'를 직접 낭독케 한 적이 있다. 이런 진행은 흔치 않은 것이지만 주례자인 필자도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신랑.신부가 번갈아 가면서 낭독한 '사랑의 맹세'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신랑: '배가 나오지 않도록 운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부: '지금의 미모와 건강을 언제나 유지하겠습니다'

신랑: '빚보증이나 사채는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신부: '카드와 바가지는 적당히 긁겠습니다'

신랑: '저출산 시대에 애국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세 명 이상 낳겠습니다'

신부: '신랑이 말한 자녀 세 명 이상 낳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신랑: '내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임을 명심하고 평생 당신만을 알고 살겠습니다'

신부: '내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임을 명심하고 평생 당신만을 알고 살겠습니다'

신랑신부: '저희 결혼을 축복해주시는 따뜻한 마음 잊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신혼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듬뿍 묻어난다. 닭살 돋는 구절도 있지만 오히려 애교 있고 귀여운 커플로 보이기도 한다. 낭독하는 도중에 하객들의 폭소와 박수가 여러 번 터져나왔다.


필자가 앞으로 주례를 하게 될 때는 이와 같은 사랑의 맹세를 직접 들어보는 순서를 가지려고 한다. 사실 열심히 덕담을 해도 얼마나 귀담아 들을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면 신랑신부가 직접 사랑의 맹세를 낭독하게 하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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