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여론과 공론조사

'민심은 천심.' 민주정치에서 여론은 필수요소다. 민주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다. 또 감정적으로 흐르기 쉽고, 한쪽으로 쏠릴 위험도 있어 숙의된 의견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여론을 너무 의식하는 정치는 중우정치에 빠질 위험이 따른다. 여론의 위험을 지적하는 이론에는 '다원적 무지'와 '침묵의 나선'이 대표적이다.

다원적 무지 현상은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일 것이라고 잘못 인지하거나, 다수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일 것이라고 잘못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의 의견임에도 소수의견이라고 잘못 인지하는 것이다. 이 현상의 핵심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사례로는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들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들어 주겠다는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 사람들은 실제 볼 수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급기야 임금에게 벌거벗은 채 거리행진까지 하게 만든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아이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소리친 후에야 모든 게 거짓임이 밝혀진다. 거짓이지만 다수가 그렇게 믿으면 진실이 되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여론의 획일화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론은 '침묵의 나선' 현상이다. 이 현상은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 의견과 동일하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발언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경우에는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여론은 항상 다수의 의견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되며, 소수의견은 사라지게 된다. 이 모습이 마치 소라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중단 등 탈원전 문제를 놓고 공론조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찬반 논란이 뜨겁다.

공론조사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만든 과학적 방법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과학적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에다 응답자들의 학습 및 충분한 토론을 결합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정부 시절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구간과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관통사업 터널공사 분쟁 때 실시하려 했으나 공사 반대파들의 반발로 백지화돼 엄청난 경제적 손실만 남겼다.

탈원전을 둘러싼 이번 논쟁의 쟁점은 공사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결정을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배심원의 판단에 따르느냐, 아니면 정부와 국회에 맡기느냐다.
진보진영은 '민주주의 프레임'으로 탈핵론에 힘을 싣고, 보수진영은 정치적 책임과 '비전문가 프레임'으로 탈핵론에 반대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공론조사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대의민주주의가 보충해야 할 숙의민주주의 과정이다. 민주정치는 논쟁을 먹고 산다.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