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프레임 전쟁 - 증세 편

노 동 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011년 8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 시장의 패배로 끝났다. 투표율이 최종 25.7%를 기록, 법적 요건인 투표율 33.3%에 미달해 개함도 못한 것이다. 오 시장과 한나라당 측에서는 '복지 포퓰리즘'을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반면 야권은 '아이들 밥 갖고 싸운다'는 말과 함께 주민투표 자체를 '나쁜 투표'로 규정했다. 아이들 밥 갖고 싸우는 나쁜 투표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민투표가 무산된 데는 이처럼 투표의 성격을 감성적으로 규정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야권이 만든 '세금 폭탄' 프레임이 위력을 발휘했다. 국민 대다수와는 별 관련이 없는 종부세였지만 세금과 폭탄이 결합한 감정적 언어는 정부·여당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구조화된 정신적 체계라고 한다. 한마디로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틀이 있다는 것이다. '프레임 전쟁'의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을 장악하는 세력이 우리 세계의 주도권을 갖는다. 프레임은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좌우되기 쉽다. 아이들 밥 갖고 싸우는 나쁜 투표라는 프레임 앞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이성적 호소는 먹히지 않는다. 세금 폭탄이라는 틀에 갇혀버리면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폭탄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정치의 세계에서 효과적인 프레임 선점을 위한 사활적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증세 프레임을 둘러싼 현 정치권의 힘겨루기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여당은 초고소득자, 초대기업에 대한 '핀셋과세' '명예과세' '사랑과세'라고 부르자고 한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부자세(稅)'를 제안했다. '최고부자에 대한 세금'이지만 존경받는 경주 '최부자'를 연상케 한다. 반면 야권은 전가의 보도인 '세금 폭탄'에 이어 '징벌적 증세' 등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프레임 싸움으로 일관할 경우 본질이 흐려진다는 데 있다. 지금도 증세 여부에 대한 타당성 논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더 감성에 호소하는 프레임을 제시할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국민의 행동과 사고를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레이코프는 프레임에 대해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질적인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고 이를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세훈 전 시장과 참여정부의 사례는 달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이 단순히 언어의 프레임 전쟁에서 패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 전 시장과 한나라당은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사회적 욕구를 읽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세금 폭탄론이 먹힌 것은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당은 본질적인 가치와 원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5년 동안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 수행에 17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거 아닌가. 심각한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서도 증세는 불가피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처럼 실효세율을 높이고 예산낭비를 줄여 재원을 확충할 구체적인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도 나서서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더 부담해야 한다는 가치와 원리를 호소해야 한다.
새 정부에 대한 신뢰와 여론의 기대가 살아 있을 때 정면대응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일 뿐 세상 그 자체가 아니다. 프레임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