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차장칼럼] 망각곡선 이론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3 17:17

수정 2017.08.03 17:17

[차장칼럼] 망각곡선 이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16년간 연구한 결과 인간의 망각은 학습 후 10분이 지나면 시작된다. 1시간 뒤 50%, 하루 후엔 70%, 한 달이 넘으면 80%를 잊어버린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이다. 기억의 장기화 노력 없이 수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그의 논리대로라면 100% 망실이다. 집단망각증에 빠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그렇다. 불과 8년 전 미국의 자동차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몰락의 길을 걷자 노사 모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현재 총체적 위기에도 이런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당시 미국 자동차 빅3는 낮은 생산성과 고유가 압력 외에도 노조의 과도한 임금.복지부담 요구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됐다. 30년 이상 근속한 퇴직자와 가족에게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줬다. 실직 노동자에게는 복직할 때까지 건강보험료와 생활비를 부담하는 등 인건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번 돈이 임금과 복지에 쏠리니 연구개발 능력과 가격경쟁력은 약화돼 신차들은 줄줄이 외면당했다. 결과는 혹독했다. 2009년 크라이슬러에 이어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철옹성 같던 빅3의 아성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GM은 이때 생긴 트라우마로 고비용 저효율 사업장에선 철저히 손을 뗀다는 암묵적인 경영원칙을 세웠고, 실제 올해 인건비가 높은 호주 등에서 공장을 철수했다.

작금의 국내 자동차산업은 2000년대 미국 빅3의 위기상황을 뛰어넘는다. 직원 평균연봉이 9000만원대인 노조가 불황기에도 임금인상 및 복지확대 요구도 모자라 파업절차까지 모두 마쳤다. 더구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 위해 기아차 노조는 6년째 회사와 법정 다툼 중이다. 1심 선고가 목전이다. 현실화되면 평균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반면, 소급적용 시 기아차가 적자기업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당장 3조원 이상을 감당해야 하고 매년 인건비가 최대 4000억원 이상 늘어나서다. 거센 사드 후폭풍 등으로 실적이 곤두박질 치는 건 노조엔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특히 기아차는 외환위기 시절 현대차로 인수돼 극적으로 회생한 기업이 아닌가. 흥망성쇠를 몸소 체득했음에도 회사 위기 앞에서 노조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당시를 잊고 있다면 망각곡선에 제대로 올라탄 것이다.

법원도 일말의 책임이 없지 않다.
원칙 없는 오락가락 통상임금 판결로 자동차 노조의 집단망각증을 거들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나'보다 '우리'를 걱정할 때다.
당장 자동차 노조가 실행에 옮겨야 할 건 일방통행식 하투(夏鬪)가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한 '기억의 습작'이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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