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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美 새 이민정책, 경제에 득될까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4 17:27

수정 2017.08.04 17:27

[월드리포트]美 새 이민정책, 경제에 득될까


'가난하고 지친 이들,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여 내게로 오라. 바글거리는 해안가에서조차 거절당한 가엾은 이들이여, 집 없는 자들이여, 세파에 시달린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 나는 황금의 문 앞에서 등불을 들고 있겠다.'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 앞바다 리버티섬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경매에 부칠 시를 부탁받은 유대인 이민자 후손이자 시인인 에마 래저러스가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1883년 11월 발표한 것이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 1886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는 이 시가 없었지만 뒤늦게 이 시의 존재가 알려져 1903년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지게 됐다. 이 시가 새겨진 이후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이민자와 난민들의 상징이 됐다.

'이민의 나라'로 상징됐던 미국에서는 현재 새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발표한 새 이민정책은 합법이민의 가장 큰 범주에 해당되는 '가족결합에 의한 영주권 발급'을 현재의 연간 100만건에서 10년 안에 절반 수준인 50만건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특정 기술을 보유하거나 영어 능통자 등에 대한 가산점을 주는 형태로 합법이민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았다.

이번 정책은 '미국 근로자를 위해 외국에서 미숙련.저임금 근로자의 유입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새 이민정책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다. 이민자를 맞아주는 미국 이민정신에 위배된다는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정책 목적 자체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논쟁이 격렬히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이민 시스템이 "빈곤을 줄이고 임금을 끌어올리며 납세자들에게 수십억달러를 절약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정책고문 역시 "새 이민정책이 미국 경제를 진작하고 미국 내 근로자의 저임금 압박을 없애 임금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미국의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경제성장 요인에는 노동과 자본축적, 기술혁신 등이 있다. 이 중 노동요인은 인구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현재 미국의 인구증가율이 둔화되고 있고 베이비붐 세대(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가 은퇴하고 있으며 이들을 대체할 젊은 미국인 노동자들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인구증가에 도움이 안된다. 애틀랜타 연방은행 연구에 따르면 은퇴로 노동시장을 떠난 미국인들은 현재 4400만명으로 지난 2000년에 비해 36%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늘어난 노동인구는 12%에 불과하다. 미국 내 외국인들의 노동참가율이 미국인들보다 높다는 점도 이민제한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에서 출생한 미국 내 핵심생산인구(25~54세)의 노동참가율은 73.4%로 미국 출생 핵심생산인구의 노동참가율(62.4%)보다 높다.

노동인구 감소를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상쇄하면 되겠지만 노동인구 감소속도만큼 빠르게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존재한다.


이민 제한이 미 연방정부의 재정 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14년 기준 미국 내 이민자들이 낸 세금은 3280억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경제적 영향을 고려한 듯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18명의 경제학자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이민 억제는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답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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