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기 세력'이 된 서민들

"(이번 정책으로) 무주택자들은 집 사기 더 힘들어졌고, 돈 있는 사람들은 잠깐 쉬어가는 '휴식기'를 맞게 된 것 같아요."

'8.2 부동산 대책' 후폭풍을 묻는 질문에 한 취재원이 한숨을 쉬며 내린 평가다.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실수요자의 체감도는 '0'에 가깝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더 놀라운 점은 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 같은 불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가장 공통된 지적은 정부가 시장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서민.실수요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과소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서민.실수요자의 경우 10%포인트 완화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하기로 했다. 단, 무주택자이면서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원(생애최초 구입자는 7000만원) 이하, 주택가격 5억원 이하(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은 6억원 이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서민의 조건을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으로 규정한 것은 최근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부가 모두 이곳에 다니거나, 외벌이 부부라도 배우자 중 한 명이 대기업에 다니면 서민이나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수요'로 분류되는 셈이다.

기업정보업체 CEO스코어가 산출한 민간 대기업(334개 기업 기준) 평균연봉(7400만원)이 7000만원대인 점만 봐도 정부가 서민과 실수요자의 범위를 얼마나 기계적으로 측정했는지 알 수 있다.

가점제 적용을 확대한 것도 정부가 지나치게 '부동산 투기세력' 없애기에만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인상을 주기 충분하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무주택기간과 부양가족수 등을 점수화해 점수가 높은 순으로 입주자를 선정하는 가점제 100% 적용으로 이뤄진다.
이는 결국 무주택기간이 짧고 부양가족수가 적은 신혼부부 등 1~2인 실수요자도 투기수요로 묶여 서울 전역 소형아파트 접근이 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피자 한 판씩을 쏘겠다"며 집값 안정화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처럼 정부가 과열된 주택시장을 잠재우기 위한 투기세력 차단에만 급급해 정작 실수요자들을 위한 '보완책' 마련에는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