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통상임금 신의성실의 원칙 조속한 기준 정립이 시급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8 18:19

수정 2017.08.08 18:19

[특별기고] 통상임금 신의성실의 원칙 조속한 기준 정립이 시급

상반기 수출량 8년 만에 최저, 전년도 대비 내수 4% 감소, 상반기 생산량 7년 만에 최저, 노조의 6년 연속 파업 결의, 국내 한 완성차 기업이 직면한 상황이다. 심지어 이 기업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통상임금 소송의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소송 결과에 따라서는 3조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회사의 전년도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업은 긴 암흑기를 지나 겨우 회복의 불씨를 지피려는데 연이어 통상임금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장기 국책 사업으로 미래 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겠다고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당장 눈앞의 장애물을 넘기에도 벅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년간 이어진 통상임금 논란을 정리하면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판례와 행정해석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임금협약을 맺어온 기업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 각종 수당이 연쇄적으로 인상된다. 기업들에게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대법원이 과거 소급분에 대해 당시 합의를 지키라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했다.

노조가 스스로 합의한 내용을 부인하고 추가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는 것이다. 임금산정 및 범위에 대한 노사간 약속을 최대한 존중함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우발적 채무로 인한 기업의 경영상 부담과 충격을 덜어주는 점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 법리는 타당하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이후 하급심 법원들은 원칙 없이 신의칙 법리를 적용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각급 법원마다 신의칙 적용이 달라지니 결국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법적 다툼이 이어져 기업은 불필요한 소송비용만 더 부담하는 실정이다. 통상임금에 관한 법적 분쟁을 불식시키고자 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법원의 예측가능성 없는 판결 때문에 기업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추가비용에 대한 우려로 신규투자와 인력채용이 위축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좋은 일자리 창출보다 생존을 위한 구조개선을 우선 택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신의칙 판단에 있어 단순 지표상 기업의 지불능력에 더해 미래 경쟁력 확보에 미치는 영향까지 읽어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일부 하급심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추가적인 엄격한 판단기준을 들어 대기업, 공공부문에서 신의칙 적용 없이 3년치 소급분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린바 있다. 대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여유롭게 축적하고 있고,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이 뒷받침 되어 경영상 어려움이 없다고 보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실제로도 통상임금 소송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공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으로 발생하는 추가비용이 향후 일자리 감소와 국민 세금 투입이라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기업, 공기업 노조 조합원들만 추가수당을 받아가고,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로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현재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 제2라운드'로 전원합의체를 구성했다. 다만 아직까지 판결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신의칙에 관한 논란이 길어질수록 산업전반의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노사합의 존중과 기업의 경영위기 방지라는 신의칙 취지에 부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판단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법원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 산업 전반의 미래 경쟁력 확보까지 고려한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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