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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부처 세종시 이전, 성급해선 안된다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1 17:28

수정 2017.08.11 17:28

[여의도에서]부처 세종시 이전, 성급해선 안된다


어떤 나무건 척박한 토양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법이다. 물과 거름이 충분해야 뿌리를 내리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 전에 행정안전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세종시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또 한 번의 무리한 이전 역사로 기록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명분은 자치분권 모델의 완성이다.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은 허술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자치분권 모델의 완성은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다.
그런데 너무 성급하다.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복합도시로 만들려는 취지야 백번 이해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방편을 만드는 것도 취지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부청사를 먼저 짓는 것이 순서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불과 1~2년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말이다.

2015년 11월 인사혁신처는 행안부 전신인 당시 행자부로부터 2016년 총선 전까지 세종시로 이전하라는 급한 전갈을 받았다. 인사처는 망연자실했다. 인사처는 바로 전년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행자부에서 인사조직이 별도로 독립한 부처여서 이전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고시를 통해 이전 대상에 포함시켜 총선 전까지 세종시 이전을 통보받았다. 행자부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청와대에서 이 같은 사실을 결정해 행자부를 통해 지시사항을 내려보낸 것이다.

문제는 이전을 위한 청사 건물이 마땅히 없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의 정주 문제도 아무런 대비도 없었다. 거의 떼밀리다시피 쫓겨났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세종시로 이전이 예정된 행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 같은 북새통을 겪을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 과정에서 이전이 먼저냐,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냐는 논의는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청와대가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는 2019년 이전까지 해당 기관들은 세종시에 새 둥지를 틀어야 한다. 그런데 둥지를 틀 만한 공간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무조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뒤가 바뀐 이런 세종시 이전 결정에 과연 무리가 없을까.

'길과장' '길국장'으로 불릴 정도로 국회 상임위가 열리는 국회 회기에는 세종시 공무원들이 서울로 총출동하면서 길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게 비일비재한데도 말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행안부를 세종시로 2년 내 옮기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행정수도인 세종시를 더 이상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렇더라도 인프라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종시 이전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세종시 청사는 빈 공간이 없다. 우선 정부청사 건립계획부터 수립하고 일을 추진하는 게 순서다.
무작정 세종시로 이전할 경우 민간건물 입주에 따른 행정상의 예산낭비, 보안 등 많은 난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히 정부청사 보안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을 민간건물에 입주시키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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