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통신요금에 올인했던… ‘2008년 데자뷔’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한국의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이 포함된 '기반 소프트웨어.컴퓨팅' 분야 격차가 미국과 1.9년이나 된다는 평가를 내놨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의 격차를 1.7년으로 줄여 4차 산업혁명 주력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이미 중국에도 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데스크를 맡고 있으면서 석달째 통신요금 인하 기사에만 매달려 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보고서였다.

통신요금 인하 논쟁이 ICT의 전부가 아닌데. 정작 내가 할 일은 ICT를 기반으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같은 신성장동력을 융합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고 기업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사로 만들어주는 것인데. 그 기사로 우리 기업들이 갈 길을 보여주고, 미래를 향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내 일인데 한 가지 사안에 매달려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정작 반성해야 할 더 큰 것이 있다.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통신요금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취임했다. 대통령의 '형님'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통신요금 인하정책의 지휘봉을 잡았다. 최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통신요금 인하에 정책역량을 총동원했다.

방통위가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역량을 쏟고 있는 사이 2009년 3월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정보기술 보고서'에서 2008년의 한국 정보통신 경쟁력이 134개국 중 11위로 밀려났다는 평가를 내놨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경쟁력이 10위 밖으로 밀려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0년 전에도 통신요금 인하 기사에 매달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경쟁력이 떨어지는 큰 그림을 놓치더니 10년 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런데 반성하는 김에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정부도 이 데자뷔를 찬찬히 곱씹어 줬으면 한다.

10년 전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역량을 총동원했던 방통위는 대통령 취임 3년 만인 2011년 이동통신 기본료 1000원 인하, 문자메시지 무료제공 확대를 담은 통신요금 인하정책을 완성했다. 그 3년간 우리나라 정보통신 경쟁력은 회복되지 못했다.


정부의 관심이 온통 통신요금 인하에만 쏠려 있었으니 산업발전의 정책 밑그림이 만들어지지 못했고, 경쟁력 회복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숙제였다.

지금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신요금 인하 방식이 10년 전과 닮은꼴이 아닌가 싶어 노파심이 든다.

우리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는 통신요금 인하에 몰빵하는 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주도적으로 대응해 젊은이들에게 새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것 아닌가. 정부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