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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럼프의 근시안적 반이민 정책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8 18:13

수정 2017.08.18 18:13

[월드리포트] 트럼프의 근시안적 반이민 정책


미국에서 주택경기는 상당히 중요한 경제지표로 꼽힌다. 그 이유는 주택 매매로 먹고사는 사람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택 매매에 중개인 외에도 여러 업자가 엮여 있다. 매매 과정에서 주택 소유권을 검토하는 타이틀 보험회사가 있고, 바이어와 셀러를 각각 대표하는 변호사도 있다.

대부분의 매입자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모기지)을 받아 집을 장만하기 때문에 은행도 이자를 통해 상당한 수입을 챙긴다. 수수료를 받고 구매자와 은행을 연결해주거나 모기지 신청서류를 준비해주는 브로커도 있다.


부동산 소유주들로부터 분기별로 재산세를 챙기는 정부도 주택시장 경기에 민감한 수혜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설회사는 어떤가.

주택 건설을 위해 시공회사가 결정되면 그 회사와 연결된 수많은 외주업체가 있다. 전기와 수도에서부터 목재, 난방, 창문, 벽널(siding), 지붕, 조명, 조경 등등 주택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엄청나다. 미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택 관련 외주업체 인부들은 거의 남미계 이민자다.

외주업체 대표들이 남미계 인부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당연히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미국인들이 직장을 잃고 경제가 타격을 입는다고 얘기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영어도 못하고 교육수준도 낮으며 미국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지론이다.

그는 앞으로 미국 영주권 발급과 관련, 영어능력과 교육수준 그리고 직무기술 같은 평가요소를 토대로 한 포인트제도를 도입해 지원자들의 순위를 매겨 발급하는 계획을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국민이 볼 때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 생각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남미계 이민자들은 미국 중산층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없이는 주택 소유주들이 주택 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당의 잔디 관리도 하기 어려우며 이사비용을 비롯한 모든 주택 관련비용이 올라간다. 심지어는 식당의 음식 값도 올라간다.

이들이 사라지면 외주업체 인부와 식당 종업원 등에 대한 수요가 상승하겠지만 이들을 백인이나 고졸 이상 직원들로 대체할 경우 업주들이 부담할 비용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업주들의 인건비 부담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은 경제의 법칙이다.

부자들은 소비에 민감하지 않다. 소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층은 바로 중산층이다.

안그래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에서 중산층의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면 미국의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은 겉으로는 미국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 경제를 죽이는 자살행위다.

남미 이민자들 없이 주택경기와 소비경기를 부양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는 현실적이고 실질적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선전적 문구로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그는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보호비를 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만 봐도 그가 눈앞에 보이는 이득에 심취돼 있는 미국인들을 얼마나 위하는 척하는지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남미계 노동자들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그의 반이민정책은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일부 유권자의 민심을 얻기 위한 '쇼'에 불과하거나 정말로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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