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 경주 최부자에게 배우는 신의칙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21 17:28

수정 2017.08.21 17:28

[윤중로] 경주 최부자에게 배우는 신의칙

세월이 흐르면 시각도 변하는 걸까. 얼마 전 경북 경주를 방문했을 때 생긴 의문이다. 경주 방문은 생애 두 번째다. 첫 번째 경주 방문은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당시 경주는 왕릉과 불국사, 석굴암 등 문화유적의 전시장으로 기억된다. 30여년이 흐른 후 찾은 경주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대상은 신라시대의 문화유적이 아니었다. 이번 주인공은 경주 교동에 있는 만석꾼 경주 최부잣집이었다.
이곳에선 가옥보다 최부잣집의 나눔과 배려 정신에 감동을 했다. 최부잣집의 가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이다. 최부잣집은 이 가훈 아래 대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가다.

특히 경주 최씨 가문의 최선국이란 인물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돈을 빌려준 후 받은 담보로 받은 토지나 가옥의 문서는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고, 나머지 문서나 돈을 빌려준 장부는 모두 불사르게 했다.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있어도 못 갚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최선국은 돈을 빌려주고도 곤경에 처한 지역주민들에게 "형편이 어려우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면서 나눔과 배려를 실천한 것이다. 어찌 보면 돈을 원칙대로 받을 수도 있지만 채무자의 사정을 배려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행동으로 옮긴 미담사례가 아닐까.

최근 신의칙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지, 말지에 대한 소송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아차 통상임금에서 법원의 신의칙 적용 여부가 관건이다. 통상적으로 법원이 신의칙을 적용하려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노사 합의가 있거나 추가 임금 청구 시 기업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건은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을 것인지 여부다. 기아차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을 기록했다. 기아차는 패소하면 3조원가량을 물어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 기아차는 3·4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아차는 올 들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중국 실적이 절반가량 줄었다. 미국 시장에서도 판매실적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줄었다. 노조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요구가 합당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자칫 기아차 노조의 행보가 국민에게 '귀족노조의 과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아자동차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밖에 없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확대 적용 시 국내총생산(GDP)이 5년간 30조원 이상 급감할 것'이라는 산업계의 주장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