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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시급하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23 17:07

수정 2017.08.23 17:07

[fn논단]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시급하다

K박사님! 이번 미국 여행 중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인간승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K박사님은 잘 다니던 경제연구소에서 하루아침에 퇴직을 당해 큰 곤경을 겪으셨지요. 경제학박사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재취업도 안되어 사십 중반 나이에 미국으로 다시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무모한 짓이 아닐까 걱정했었습니다.

그는 당시엔 이름도 생소한 의료통계학(biostatistics) 대학원 과정에 입학해 늙은(?) 조교로 일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버텨냈고 드디어 직장을 잡아 의료통계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 65세인데도 그는 앞으로 4년간 더 일하고 은퇴할 거라고 한다. 의료통계 전문가로 이제는 확고한 자리를 잡은 그를 올여름에 재회하는 감격을 누렸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성공 사례가 아닌가!

H박사님도 오랜만에 만나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H박사는 투잡 생활을 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주된 직장엔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나가고 나머진 파트타임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한다. 원래 컴퓨터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통계학을 하였는데, 통계학 교수가 앞으로는 컴퓨터보다 통계학이 나을 거라고 권유해서 통계학을 공부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했다. 당시엔 컴퓨터가 새로운 분야로 한창 인기 있을 때였다. 컴퓨터를 전공한 그의 친구들은 오래 전에 퇴직했지만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J양은 병원전문 약사인데 직장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꽤 좋은 직장에서 정규직을 제안받았는데 J양은 그 좋은 기회를 거절하고 파트타임 조건으로 일한다고 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었다. 그녀의 주장은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쌓고 좀 더 배우고 싶어 학업과 병행할 수 있는 조건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한 직장에 매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파트타임직이 정규직에 비해 연금과 복지 혜택에서 불리하지만 장래 경력 개발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상기에 소개한 세 사람의 경우 일의 형태와 직무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제상황과 근무성과에 따라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미국의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확보돼 고용주가 미래의 경기변동에 대한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어서 고용이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 노동시장은 다양한 형태의 유연성을 확보해가고 있는데 우리의 노동시장은 좀처럼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일수록 노동시장 안에 이미 진입한 기득권자들은 좋지만 새로 진입하려는 청년 구직자들은 그만큼 입구가 좁아져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청년층의 일자리는 점차 줄어드는 일자리 구축현상(crowding-out)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식 제도가 우리에게도 모두 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우리에게 적합한 형태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이다.

이윤재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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