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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파생상품에 매단 족쇄, 언제까지 이대로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23 17:07

수정 2017.08.23 22:59

황영기 "모래주머니 달고…"
과잉 규제에 부작용 속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23일 파생상품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열린 '제15회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에서다. 황 회장은 국내 파생상품 시장을 불에 새까맣게 탄 숲에 비유했다. 그는 "숲을 만드는 데는 30년이 걸리지만 숲을 태우는 것은 하루이틀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금융당국은 전방위적인 파생상품 규제책을 내놨다. 그러자 한때 세계 파생상품 시장을 리드하던 한국은 순식간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황 회장은 "다른 나라는 100m 달리기를 할 때 속도를 더 내려고 신발과 옷을 개량하는데 우리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뛴다"고 말했다. 이래선 도저히 다른 나라를 앞설 수 없다. 당국은 금융투자업계 의견을 대변하는 황 회장의 고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의 고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고강도 규제가 나온 2011년은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고 3년째 되는 해다. 세계 금융시장은 혼란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다. 월가에선 허접한 파생상품이 금융위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내에선 환율 파생상품, 곧 '키코(KIKO)사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파생상품 투자는 한탕주의, 투기와 한묶음으로 취급됐다. 국회는 금융규제의 끈을 더 세게 조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잇단 정부 규제는 적중했다. 문제는 규제에 과잉 요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승수(거래단위)를 대폭 올리고, 개인투자자에게 진입장벽을 치자 시장은 폭삭 쪼그라들었다. 개인이 선물.옵션에 투자하려면 예탁금 수천만원을 맡겨야 한다. 또 사전교육을 듣고 모의거래를 해봐야 한다. 사실상 개인은 선물.옵션거래 시장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과잉 규제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국내에서 길이 막힌 개인투자자들은 눈을 밖으로 돌렸다. 작년 해외에서 일어난 파생상품 거래는 2조8000억달러에 이른다. 규제 전보다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불법적 계좌 대여행위도 판을 친다. 예탁금이나 사전교육, 모의거래 없이 선물.옵션 거래를 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꼬드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제가 되레 투자자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꼴이다.

파생상품 규제를 2011년 이전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국회 벽이 높다.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자유한국당)은 황 회장과 같이 참석한 컨퍼런스에서 "국회가 오히려 규제를 더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렇다 해도 지나친 규제는 단계적으로 손을 보면 좋겠다.
지금은 투자자 보호에 집착한 나머지 시장을 짓누르는 꼴이다. 적어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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