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세불리기

우연의 일치일까. '영원한 우방' '혈맹관계'를 자부하던 한국과 미국의 물러설 수 없는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즈음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한·미 FTA를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로 지칭하며 사실상 재협상 수준의 개정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암참이 세 불리기에 나선 건 여러모로 시사점이 있다. 700개 넘는 회원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 해외기업 경제단체인 암참은 이달 초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분과위원회'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한국 진출을 희망하는 미국의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고, 국내 기업들과의 합작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게 암참의 설명이다.

아울러 '한·미 양국 간 무역관계 개선과 무역 증대를 위한 활동'도 포함했다. 양국 경제협력의 가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암참은 MIA 출범을 알리면서 '미국의 무역적자 감소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표현도 슬쩍 넣었다. 분과위원장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김정욱 변호사가 맡은 점도 석연치 않다. 이를 한·미 FTA 시행 이후 무역적자가 2배 늘었다며 아전인수격 개정을 요구하는 트럼프 정부의 입장과 연관짓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암참은 지난 5월 매년 워싱턴 정가를 방문하는 '도어녹(Door-Knock)'을 다녀와 "한·미 FTA의 긍정적인 효과를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국내 언론에 알렸다. 특히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등 강경파의 마음을 어느 정도 돌리는 성과도 거뒀다고 자신했다.

그럼에도 이제 막 만들어진 한·미 FTA 협상테이블에서 견해차는 극명하다. 미국은 여전히 무역불균형을 해소해 무역적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초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물론 우리 측도 개정협상은 '수용불가'라는 완강한 태도로 응수했다. 현재로선 양측이 접점을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동차, 철강 등 미국이 '주범'으로 꼽은 우리 수출기업들의 타격이다.

협상이 장기화 국면으로 가는 동안 미국은 이들 업종에 대해 반덤핑 등의 통상압력을 더욱 조일 게 뻔하다. 자칫 양국 정부의 힘겨루기 속에 우리 기업들의 등만 터질 수 있다. 현대차가 암참의 올해 도어녹에 국내기업 최초로 동행한 것도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포스코, 두산, 효성 등 굴지의 수출기업들이 현대차의 뒤를 이어 암참 회원사에 속속 가입한 것도 자구책일 게다. 공교롭게도 우리 기업들을 대변할 경제단체들은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최대한 자제하는 눈치다. 암참이 전담조직을 만들고 사실상 한·미 FTA 개정을 '적진'에서 대놓고 지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