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혁의 눈] “'사랑싸움' 아니에요 '폭력'입니다”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27 09:00

수정 2017.08.27 09:00

성인 여성 10명 중 6명,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 있어
5년 동안 매년 46명 사망, 재범률도 76% 넘어
피해자들 보복 우려해 신고 꺼리고 관련법도 없어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안전이별’이란 신조어까지 등장
[이혁의 눈] “'사랑싸움' 아니에요 '폭력'입니다”

올해 2월 서울에서 이별을 고한 연인에게 불산을 뿌려 살해한 50대 남성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6월 청주에서는 20대 여성이 집 근처 교회 베란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이 역시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화가 난 남자친구가 범인이었다.

지난달에는 서울 신당동에서 만취한 남성이 전 여자 친구를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피해 여성은 치아 5개가 빠지고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앞서 언급한 3가지 사례처럼 연인 간에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이 해마다 늘고 있다. '데이트 폭력'이란 서로 교제하고 있거나 과거에 연인 관계에 있었던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위협을 말한다.
데이트 폭력은 다치는 것은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경찰청이 집계한 ‘데이트 폭력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1년 7292건, 2,012년 7584건, 2013년 7237건으로 매년 증가하다가 2014년 6675건으로 잠시 하락했다. 그러나 2015년 7692건, 지난해 8367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2011~2015년까지 5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233명이 사망했다. 매년 평균 46명이 사망한 꼴이다. 데이트 폭력 재범률도 76%가 넘어 가해자가 또다시 연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 로맨스를 가장한 ‘데이트 폭력’의 4가지 종류

데이트 폭력이라고 말하면 피가 나거나 몸의 일부가 다쳤을 경우 등 신체적 피해만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도 폭력에 해당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데이트 폭력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통제 피해가 있다. 대표적으로 지인을 못 만나게 하거나 시시각각 무엇을 하는지 알리는 것을 강요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외에도 친구 관계 간섭, 위협적인 문자 반복적으로 전송, 옷차림 지적, ID·비번 공유 강요도 해당된다.

성적 피해는 원치 않는 성행위나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이 해당된다. 또한, 성관계시 피임 도구 사용 거부, 임신 등 책임을 거부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피해는 데이트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거나 ‘죽어’, ‘못생겼어’ 등 폭언을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공개적으로 망신 또는 수치심을 주는 것, 외모, 성격 등을 비하하는 행위도 있다.

신체적 피해는 물리적으로 폭력을 사용해 상해를 입힌 경우를 말한다. 폭력을 가했을 때 흔적이 남지 않아도 해당된다.

[이혁의 눈] “'사랑싸움' 아니에요 '폭력'입니다”

■ 성인 여성 10명 중 6명,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 있어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발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보고서(성인 여성 1,017명 대상)에 따르면 성인 여성 10명 중 6명은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유형별 피해 경험(중복 응답)을 살펴보면 통제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62.6%(637명)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성적 피해 48.8%(496명),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피해 45.9%(467명), 신체적 피해 18.5%(188명) 순이었다.

통제 피해 발생 후 느낌을 묻는 질문에는 38.9%가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35.8%는 ‘아무렇지 않았다’, 32.1%는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라고 응답했다. 주목할 점은 ‘내가 더 잘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는 응답도 18.3%를 차지해 자신을 통제하는 상대의 행동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적 폭력 피해 발생 후에는 ‘상대에 대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라는 응답이 30.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창피했다(28.9%)’, ‘헤어지고 싶었다(23.2%)’, ‘무기력 또는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18.8%)’ 등이 있었다.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는 응답도 29.3%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연인 관계에서 성폭력과 성관계가 구분되지 않고, 성폭력이 피해자가 수치스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잘못된 통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피해 발생 후 느낌으로는 ‘헤어지고 싶었다’, ‘상대에 대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라는 답변이 각각 40.1%로 가장 높았다. 이어 ‘무기력 또는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37.2%)’, ‘점점 무섭고 두러워졌다(26.8%)’ 순이었다.

신체적 폭력은 가시적으로 드러난 폭력으로 분명히 인지하는 경향 때문에 ‘점점 무섭고 두려워졌다’라는 응답이 44.4%로 가장 높았다. 이어 ‘헤어지고 싶었다(41.8%)’, ‘상대에 대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34.4%)’, ‘무기력 또는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32.3%)’ 등이 있었다.

[이혁의 눈] “'사랑싸움' 아니에요 '폭력'입니다”

■ ‘데이트 폭력’ 관련법 없어.. ‘안전이별’ 걱정하는 사람들

데이트 폭력이 급증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이 도움 요청을 망설이는 이유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데이트 폭력 관련법이 없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피해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고를 해도 피해자의 신변 보호는 경찰관 개인에게 맡겨지고 처벌을 해도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으로 심각해지자 최근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잘 헤어지는 방법부터 걱정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이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안전이별’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데이트 폭력을 ‘사랑싸움’이라는 사소한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제도적인 장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 폭력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최소한의 배려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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