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재훈 칼럼] '노동존중' 하라며 대타협이 될까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30 17:11

수정 2017.08.30 17:11

바세나르 협약은 양보의 산물.. 친노동 노사정위론 기대 못해
文위원장 균형자 역할에 주목
[이재훈 칼럼] '노동존중' 하라며 대타협이 될까

민주노총 설립의 주역이었던 1세대 노동운동가 문성현씨가 노사정위원장에 위촉된 데 대해 노사의 반응이 하나같이 떨떠름했던 것은 의외였다. 재계와 야당이 "선수가 심판을 맡아 뛰는 것" "노사노(勞使勞)위원회"라고 목소리를 높인 건 당연했다. 반색할 법한 민노총과 한노총마저 "노사정위의 성격이 변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계했다.

노동계와 재계, 정부가 모여 노동문제에 대해 협의하는 사회적 타협기구인 노사정위원회는 주로 중립적인 인사들이 위원장을 맡아왔다.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노동계 출신 위원장이 나선 것은 식물상태의 노사정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탈퇴한 민노총과 한노총이 이제 복귀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찮다.
양대 노총의 시큰둥한 반응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왜 노사정위를 복원하려는 걸까. 그리고 어떤 대타협을 도출하려는 걸까. 문 대통령은 29일 문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존중의 비전을 살려내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노동존중 사회'는 현정부의 국정과제다. 문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격차 해소'를 중점과제로 지목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처우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양극화를 타파하자던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과 다를 바 없다.

임금격차와 고용격차는 기업 못지않게 노조의 책임이 크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구성된 강성노조의 '철밥통 지키기'에 기업들은 사람을 마음대로 쓸 수도, 자를 수도 없다. 비정규직이 늘고 청년 취업이 막히는 이유다. 이른바 10% 노동귀족의 횡포로 평균연봉 9400만원인 현대차 노조의 일상화된 파업을 상기해보면 된다. 따라서 격차해소를 위해서는 노조의 기득권 내려놓기와 고용 유연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한다든지,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를 폐기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격차의 책임이 온전히 기업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비판하자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 경총이 반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문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이 된 게 아니다. 노사 사이에서 균형잡힌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노동존중 사회 구현'이라는 특명을 받은 그가 노동계의 적극적인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늘상 꼴찌를 차지하는 것이 '노사관계' 분야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경직된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정부는 고용 유연성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노동 존중'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저런 요구를 받은 기업은 노동비용이 감당할 수 없이 증가하면 사업을 축소하거나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일자리 위기는 불보듯 뻔하다.

문 위원장은 취임식에서 노사정 대타협으로 위기를 극복한 1982년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을 언급했다. 노조는 임금삭감, 사측은 근로시간 단축, 정부는 감세와 재정개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지켜낸 것이 바세나르 협약이다.
이는 노사정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내가 먼저 양보한다는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만 좋은 노사정 대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공평한 양보와 타협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문재인정부의 노사정위원회도 앞길이 험난하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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