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통신요금 '늪'으로 들어간 과기정통부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31 17:25

수정 2017.08.31 17:25

[이구순의 느린 걸음] 통신요금 '늪'으로 들어간 과기정통부

정부발 통신요금 인하 정책의 첫 카드가 먹혔다. 약정할인율 높이기를 관철해냈다.

전 국민은 다시 확인했다. 역시 정부가 호령하면 통신요금 내리기 정도는 가볍게 성사시킬 수 있다. 눈 아프고, 손 아프고, 다리 아프게 인터넷을 뒤지고 유통상가를 돌아다니며 싼 스마트폰, 좋은 서비스 고르는 일 따위는 바보짓이다. 데이터를 아껴쓰고 서너달에 한번씩 더 싼 요금제 나온 것 없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가 지나고 나면 요금은 자연히 내려가니 통신요금 인하 시위에 박수를 보내는 게 상수다.

통신회사들도 다 안다. 싼 요금제, 좋은 서비스 개발에 미리 투자하는 것은 자칫 회사에 큰 손해만 된다. 브랜드 치장하는 데 공들이는 게 낫다. 어차피 선거 때면 통신요금 인하 공약이 나올 것이고 매출이 줄어들 테니 미리 싼 요금제, 좋은 서비스 만드는 데 비용을 들이면 2배 손해다. 차라리 5세대(5G) 이동통신용 주파수 값을 깎아달라고 시위를 하는 게 낫다.

애초 싼 요금을 내세워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알뜰폰 사업자들은 죽을맛이다. 소비자들이 싼 요금제를 찾지 않으니 살 방법이 없다. 올해는 시설투자도 하고 이동통신회사들이 만들지 못한 틈새형 서비스도 개발해 나름 독자적 경쟁력을 챙겨볼 생각이었지만 부질없게 됐다. 결국 이동통신회사의 통신망을 빌려쓰는 대가를 깎아달라고 정부에 매달리고 시위하는게 남는 장사다.

알뜰폰을 만들어놨으니 정부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시위를 모른 체할 수 없다. 결국 이동통신회사의 팔목을 한번 더 비틀어야 한다. 이렇게 통신요금 정책의 늪이 시작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설립되고 새 장관이 취임한 지 두 달이 가까워온다.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두세 발은 앞서 있다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같은 4차 산업혁명이 급하다고 4차 산업혁명 밑그림을 그리는 주무부처로 과기정통부를 만들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과기정통부는 통신요금 인하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다른 일은 손도 못 댔다. 유영민 장관이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대한 해명,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위상 축소에 대한 해명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세간에는 전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미래'를 떼낸 이유가 미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슬픈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규제정책은 사실 당하는 기업보다 권한을 가진 정부가 더 경계해야 할 무서운 늪이다. 일단 한번 발을 들이기는 쉽지만 혼자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과기정통부가 지금 그 통신요금 정책의 늪에 발을 들였다. 지금 내놓은 계획대로라면 내년에도 내내 통신요금 인하와 뒤치다꺼리에 시달리게 생겼다.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현명하게 출구정책을 찾아주기 바란다.
과기정통부가 과거형 규제의 악순환이 아닌 미래형 발전의 고리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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