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립유치원에 ‘교사 블랙리스트’?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05 17:15

수정 2017.09.05 17:15

원장들 단톡방서 ‘평판조회’ 교사 취업방해 우려 논란
잦은 야근.높은 업무강도에 교사 높은 ‘이직률’도 한몫
일부 갈등 비화된 것 반론도
사립유치원 교사에 대한 원장의 '취업방해'가 만연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교사들은 일부 원장이 이른바 '교사 블랙리스트' 운운하며 부당한 처우를 강요한다고 호소했다. 반면 가뜩이나 교사 채용이 힘든 상황에서 블랙리스트는 있을 수 없고 일부 원장과 교사간 갈등이 비화된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원장 말 안 들으면, 블랙리스트?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 A씨는 5일 B원장의 횡포를 떠올리면 몸이 떨린다고 전했다. B원장이 1년에 한 번 있는 여름휴가를 '토일월'에 가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적은 휴일에 격분한 A씨가 퇴직을 준비하자 B원장은 "다시는 이 바닥에서 교사를 못하게 해버린다"며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A교사는 "블랙리스트 실제 여부는 모르지만 평소 원장이 농담조로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며 복종을 강요했다"며 "유치원장들 간에 공유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나중에 직장을 옮길 때 취업이 안 될까봐 막말과 반복되는 야근도 참았다"고 주장했다.

원장과 교사 간 블랙리스트 논란은 사립 유치원 교사의 높은 '이직률'이 원인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2015년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 권익보호 실태 및 증진 방안'에 따르면 사립 유치원 교사의 48.1%는 이직경험이 있다. 잦은 이직은 높은 강도의 정신노동, 낮은 급여, 열악한 근무조건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국공립 유치원 교사는 임용고시를 통해 공무원 지위를 보장받는 반면 사립유치원은 개인경영이면 원장, 법인이면 이사장이 채용권한을 갖는다.

교사들이 블랙리스트를 의심하는 것은 지역중심으로 유치원 원장들이 '교사 정보'를 공유하면서 교사 채용 시 전(前) 직장에 전화를 하거나 이력서를 단체카카오톡방(단톡방)에 올리는 '평판조회'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교사들은 어느 유치원에 이력서를 냈는지 지역의 모든 원장이 알고 있다며 개인정보가 보호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원장들이 단톡방에서 이력서를 공유하는 게 블랙리스트처럼 사용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유치원 교사 C씨는 "원장들끼리 교사정보공유가 너무나 쉽다"고 주장했다. C씨는 "교육청 내 소속된 원장들은 대부분 단톡방이 만들어져있다"며 "단톡방에 교사 개인정보와 부정적인 말 한마디만 써도 교사는 불이익을 당하기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상식적인 업무강도와 부당대우로 그만두려는 교사에게 '이 지역에서 교사일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며 협박하는 원장이 많다"고 토로했다.

반면 유치원 원장들은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교사를 경계하기 위해 평판조회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1년 동안 한 반을 맡아야 하는 교사가 중간에 이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D원장은 "블랙리스트는 없다"면서도 "1년에 몇 번씩 그만두는 무책임한 교사가 많아 수시로 채용을 진행하다보니 평판조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고의성 입증이 관건

전문가들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처벌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근로자 취업을 방해하기 위해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사용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평판조회는 다른 직종에도 있다"며 "평판조회 시 사용자가 근로자 근태나 업무적성을 말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취업이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판조회라고 사용자들 간 정보를 공유해 동일 지역에서 일하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평소 사용자들이 블랙리스트를 언급해 근로자들이 위해를 느끼면 협박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채용 시)품평조회를 명분으로 지원자에 대해 유선상으로 확인하는 문화인 것 같다"며 "실제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서류상 존재하지 않고 내용상 있어도 고의성 입증이 어려우면 법적규제는 힘든 면이 있다"고 전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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