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자주국방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北 핵폭주 금지선 밟았다면 전작권 조기 환수 연연말고 실질 억지력 먼저 확보하길

지난 3일 북한 아나운서 리춘희는 조선중앙방송에 나와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을 외쳤다. 그 순간 1994년 판문점 회담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가 송영대 통일원 차관에게 "서울 불바다"를 위협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취재 현장에서 봤던 그의 이글거리던 눈빛보다 이번 이춘희의 격동적 목소리가 더 섬뜩했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미 방송 회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뻥을 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탄(ICBM)급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은 실제 상황이었다.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은 신기루를 쫓는 격이 돼버린 꼴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지난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국방개혁을 채근했을 듯싶다. 즉 "북과 남의 GDP(국내총생산)를 비교하면 남한이 45배"라며 방산비리로 인한 국방예산 누수를 질책하면서 '한국형 3축 체계'의 조속한 구축을 당부하면서다.

이론상 북한 핵.미사일에는 '대화'와 '제재' 그리고 '억지' 등 3차원의 대응옵션이 있다. 한국형 3축 체계는 킬체인(북 미사일 발사 징후 시 선제제거 시스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북 미사일 공격 시 대규모 미사일 보복) 등 세 가지 억지력을 뜻한다. 대화로도, 제재로도 북의 핵폭주를 못 막는 지경이면 억지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은 당연하다.

다만 전시작전권(전작권) 조기 환수를 전제로 3축 체계 구축을 서두른다면 문제다. 벌써 그런 기미도 보인다. 송영무 장관은 지난주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국방개혁 완료 시 전작권은 전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운을 뗐고,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도 협력 의사를 밝혔단다. 이는 대선 공약대로 문재인정부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3축 체계가 '신의 방패'일 순 없다. 예컨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조차 여권내 이견과 반대단체들의 시위 속에 몇 달째 표류해 오지 않았나. 앞으로 17조원을 쏟아부어 킬체인과 KAMD를 구축한다고 치자. 실제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징후가 있을 때 사공만 많고 위기에는 둔감한 리더십으로 대규모 선제공격을 결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김정은인들 바보인가. 이미 킬체인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동발사대와 고체연료, 잠수함 발사 등 갖은 수단을 시험하고 있다. 킬체인을 계획대로 배치하더라도 상응하는 정찰.탐지 능력을 배가하지 않으면 고철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북이 쏜 발사체를 우리만 방사포로 '오인'한 데서 불길한 조짐이 읽힌다. 수많은 정찰위성으로 들여다본 미국은 진작 단거리미사일로 결론을 냈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한.미 동맹에 따른 연합군 지휘권을 자주권이라는 좁은 시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미군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독일 등 나토 회원국들은 죄다 미국의 종속국이란 말인가. 필자는 최저임금 상향 등 경제실험은 성패가 불분명하지만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시도해볼 순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현안은 선무당처럼 다룰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안보정책에 관한 한 "그 동기로서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돼야 한다"는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말이 백번 옳다.


자칫 5000만 국민이 북핵의 인질이 될지도 모를 위기 국면이다. 문재인정부는 전작권 조기 환수라는 강박증으로 한.미 동맹에 금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 허울만 그럴싸한 자주국방을 추구하기보다 억지역량 강화 등 내실을 먼저 다질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