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트럼프의 판박이 협상술

기업인 출신답다. 돌출행동으로 협상 테이블을 흔드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기다. 1987년 부동산 디벨로퍼로 돈을 긁어모으던 트럼프는 당시 3000만달러에 이르는 신형 보잉727 항공기를 500만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이 성사되긴 했는데 트럼프의 최종 구매가격은 800만달러였다. 우연인지 악연인지 보잉은 트럼프 당선 이후 747-8 기종을 전용기로 팔아먹으려다 막판에 트위터로 공개 퇴짜를 맞았다. "40억달러라는 비용은 통제 불능"이라는 이유다.

구매협상에서 헐값 수준의 가격을 제안하는 방법은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를 노린 전술이다. 초반부터 가격을 후려치면 그 가격을 기준 삼아 흥정을 해볼 수 있다.

이 전술을 트럼프는 국제무대에서도 활용 중이다. 계약파기 의중을 내비치고 선심 쓰듯 양보하는 패턴이다. 2차 협상이 막 끝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폐기할까?(may have to terminate?)"라고 트윗하며 으름장을 놨다. 중국에도 대북제재를 빌미로 여러 번 칭찬과 압박을 병행했는데 위안화 절상이나 통상압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 전술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복사해 붙이기' 했다. 백악관 참모들에게 협상을 깨라는 지시를 내렸고, 한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트위터를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 뒤엔 짜인 각본이 뒤따랐다. NAFTA 2차 협상을 끝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5일(현지시간) "한국과 성공적인 논의를 할 것을 희망한다"며 논란을 봉합했다. 다음날엔 백악관이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공교롭게도 미국이 한국에 대량으로 무기를 판매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간 뒤였다.

트럼프의 판박이 전략에 한국의 실무진이나 정치권이 쉽게 동요할 필요는 없다.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후 블룸버그통신은 "각국 정상들이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할지 간파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흔들기 전략을 지적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판박이 전술에 대처하는 방법도 거론했다. 한국도 유념해야 할 내용이다. "트럼프의 트위터에 반응하지 마라." 흔들기 전략으로 동요시키는 것이 그의 전술이다. "(대면하고 있을 때) 논란되는 주제는 피하라." 그가 원하는 주제에 빠져들었다간 다음날 곡해된 내용을 트위터나 방송 뉴스에서 보게 될 것이다.
"협상하고픈 주제는 먼저 꺼내라." 트럼프와 같은 전략을 먼저 써먹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후려치기 전략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의 대니얼 에임스 교수는 "수년간 가르쳐보니 협상전략을 배우는 대다수 학생이 트럼프식 후려치기 전략에 푹 빠진다"면서 "상대방이 정반대로 엄포를 놓는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최악이고, 협상을 깨고 가버리는 경우가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sh@fnnews.com 김성환 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