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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규제개혁, 대통령이 나서도 안될 판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08 17:40

수정 2017.09.08 17:40

문재인정부가 4개월 만에 규제개혁 방안을 내놨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을 열고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시스템 도입을 골자로 한 규제개혁안을 확정했다. 신사업을 테스트하는 '규제 샌드박스'처럼 일단 허용한 다음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규제하겠다는 얘기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만 발표해온 정부가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규제개혁이 신산업, 신기술, 중소기업 등 특정 분야에 집중돼서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규제개혁은 업종이나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더 폭넓게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효과가 크다. 그래야 기존 산업에서도 혁신이 일어나 신산업이 나오고 일자리가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투자여력이 큰 대기업 관련 규제완화 조치도 뒤따르길 바란다.

사실 한국의 규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우버 등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다. 중국이 3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한 원격진료는 10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도 막혀 있다.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해도 실험하러 외국으로 가는 처지다.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90년대부터 역대 대통령들이 규제를 없애려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명박정부는 전봇대를, 박근혜정부도 손톱 밑 가시를 뽑는 데 실패했다. 김대중정부를 빼고는 정권말에 규제 수가 되레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도 안되는 상황에서 총리실 주도의 규제개혁이 잘 될지 의문이다.

규제개혁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의원입법 때문이다. 엊그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에서 전체 입법의 94%를 차지하는 의원입법이 사전영향평가가 의무화되지 않아 무분별하게 규제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의원입법의 태반이 정부가 규제심사를 피하려 우회적으로 만든 청부입법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판국에 문재인정부는 공무원 수를 늘려 '큰 정부'를 지향한다. 공무원 수가 늘어나면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규제개혁은 공직사회의 의식변화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영국은 지금 규제 하나를 만들려면 세 개를 없애야 한다.
의원입법의 규제영향평가라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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