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자본시장은 초대형IB를 반길까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2 17:18

수정 2017.09.12 17:18

[특별기고] 자본시장은 초대형IB를 반길까

현재 한국 경제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정체된 경제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벤처.창업 발굴과 지원이 필요한데 이에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긴요하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혁신형 기업에 대한 모험자본의 공급은 대출영업 중심인 은행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투자은행(IB) 육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초대형.대형 IB 육성방안을 보면 과연 자본시장이 이를 반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준 제임스 카빌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일 환생(reincarnation)이 있다면 나는 채권시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기업의 생사뿐 아니라 각국 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채권시장의 힘을 빗댄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힘이 세지 않다. 투자은행은 자본시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투자은행을 키우는 방법이다. 최근 정부의 투자은행 육성책은 자기자본을 늘린 금융투자회사에 발행어음 및 종합투자계좌(IMA) 업무를 허용하고 기업대출을 확대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는 원금과 약정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예금과 흡사하다. 원래 자본시장에서 활동하는 증권회사들은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다. 한국의 금융투자회사들은 이미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취급하고 있으니 예외적이다. CMA에 더해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 업무까지 허용되는 경우 초대형 투자은행들은 자금조달 측면에서 상업은행에 더 가까워진다. 자금운용 면에서도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과 더 가깝다. 원래 증권회사들의 신용공여는 증권업무 및 인수합병(M&A), 구조화금융 등과 관련된 업무에 국한된다. 한국의 경우 자본시장 업무범위를 넘어선 일반적 기업신용 공여가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허용됐고, 최근에는 그 한도 확대가 추진 중이다.

국내 금융산업은 상업은행 비중이 너무 크고 자본시장이 취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투자은행을 육성하는 것인데 오히려 상업은행 업무를 허용, 확대하는 방식이라면 결과는 미지수다. 물론 그동안 투자은행 육성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신.여신 업무라는 당근에 이끌려 덩치를 키운 초대형.대형 투자은행들이 자본시장 본연의 업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지 의문이다.

원활한 위험투자 중개와 운용을 위해 투자은행의 자본규모가 충분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해외 유수의 투자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자본규모가 커야 한다. 그러나 자본규모가 크다는 것은 투자은행이 활성화되기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전까지 자본규모를 키우는 데 관심이 없던 금융투자회사들이 상업은행의 수신·여신 업무라는 당근이 제시되자 규모를 키운다면 어느 쪽 업무에 더 치중할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초대형.대형 투자은행들이 이름과 달리 점차 상업은행의 행태를 보이게 된다면 자본시장 발전에 장애가 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만일 자본시장에 지능이 있다면 현재와 같은 초대형.대형 투자은행 등장을 오히려 염려할지도 모르겠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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