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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통상임금 갈등, 체계 혁신으로 풀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4 17:06

수정 2017.09.14 17:06

[여의나루] 통상임금 갈등, 체계 혁신으로 풀어야

기아차 노동조합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막대할 것이며, 우리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해외로의 이전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물론 대기업은 이 부담을 혼자서 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부는 제품 가격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일부는 하청단가 인하를 통해 중소협력기업에 그리고 일부는 협력회사 근로자와 비정규직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시대의 과제인 차별 해소와 공정사회 실현은 더 멀어질 것이다.

이번 소송의 불씨는 1988년 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 제공했다.
이 지침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면서 대기업 노사의 타협 지점은 상여금 또는 각종 수당 신설 또는 인상이었다. 이를 통해 노조 입장에서는 명목이야 어떻든 임금이 크게 상승했고, 기업 입장에서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으로 인상함으로써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 등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여금 연간 지급률이 1000%가 넘는 대기업도 생겨나게 됐다. 문제는 이름만 상여금이었지 성과와의 상관성이 희박해 거의 고정적 급여나 다름없었다.

기업이나 개인의 성과와 무관한 상여금 비중이 높아지면서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노사갈등과 법적 다툼이 잦아졌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연장근로수당 등의 증가분에 대한 추가 지급에 관해서는 모호한 판결을 내렸고, 이로 인해 또다시 수많은 기업에서 노사갈등과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음을 전제로 노사가 임금협상에 합의했기 때문에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해석했다. 이 경우 기업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증가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의칙의 구체적 적용에 있어서 임금증가분 지급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또 다른 노사갈등의 불씨를 만들었다. 즉 당기순이익이 발생하는 등 재무상태가 괜찮은 기업에서는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고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추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해석해 노동조합의 임금지급 요구 소송이 줄을 이은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추가 임금인상을 기대할 수 있는 집단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이다. 이들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의 임금격차를 감안한다면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임금인상을 추구하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요구는 법적 판단에 앞서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힘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힘의 행사를 절제하고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임금 관련 제도의 흠결을 바로잡는 것이다.
우선 노동부 지침과 법원 판례에 의존해 안정성이 없는 통상임금 범위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법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임금체계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기회에 복잡한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직무의 난이도와 성격을 감안한 직무급, 개인 및 기업의 업적과 연계된 진정한 성과급의 비중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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