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주부 상대 사기 재테크 사이트 기승

박준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4 17:11

수정 2017.09.14 17:11

'1시간 만에 760만원 벌었어요' '재테크 요청해 300만원 벌었어요'
육아.주부 인터넷 카페 가장 재테크 도와준다 쪽지 보내 돈만 받고 나중엔 잠적
#.7살 아이를 둔 주부 김모씨는 지난 7월 23일 인터넷을 하던 중 '수익을 내는 것을 도와드린다'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 적힌 주소를 클릭하자 인터넷 카페로 연결됐고 카페에는 투자해서 고수익을 냈다는 후기로 가득했다. 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라인 상담을 받았고 인터넷 복권 '파워볼'을 대신 해주고 고수익을 내준다는 말에 투자해보기로 결심했다. 1시간이 지난 뒤 파워볼 사이트에 접속한 김씨는 깜짝 놀랐다. 투자금 40만원이 518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던 것. 김씨는 돈을 받으려면 수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의심 없이 계좌이체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입금한 돈만 무려 2300만원. 그제야 김씨는 속은 것을 알고 쪽지를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김씨는 "육아만 하느라 세상 물정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가짜 도박사이트를 이용해 돈만 받고 잠적하는 이른바 '먹튀' 도박사이트 투자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을 범행대상으로 하고 있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찰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집중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진화된 수법에 피해 급증, 최근 3달간 30건 신고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10월 31일까지 운영 중인 불법 사이버도박 집중단속 기간에 먹튀 도박사이트 투자사기에 대한 단속도 병행 추진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최근 관련 피해가 급증하면서 실제 도박사이트 운영자나 행위자 뿐만 아니라 사이트를 이용한 사기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먹튀 도박사이트 투자사기를 저지르는 이들의 수법은 기존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부당이득을 챙기는 수법에서 진화했다. 경찰과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재테크를 도와준다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지만 정보가 부족한 주부들을 주된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에르메스픽', '이지웨이', '맘마미아' 등 쪽지에 링크된 사이트도 유명 유모차를 파는 인터넷 카페인 것처럼 가장해 주부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카페에는 '1시간 만에 760만원 벌었어요', '재테크 요청해 300만원 벌었습니다' 등 재테크 성공 후기와 댓글이 가득했고, 이를 본 주부들은 온라인 1대 1 상담을 했다. 재테크 방법은 인터넷 복권인 파워볼이나 스피드키노를 통해 고수익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눔로또를 운영하는 복권진흥협회에서 운영하는 것"이며 "난 이미 수억원의 이득을 내면서 사이트에서 강제퇴출 당해 가입이 안 되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서 알려주면 대신 해주고 수익의 일부만 받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혹된 주부들은 사이트에 가입한 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기고 돈을 투자했다. 몇 시간이 지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투자금은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불어나 있었다. 주부들은 돈을 인출하려 했지만 이들은 해외 사이트라 환전과 본인인증 등 각종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추가 입금을 유도했다. 피해자 김모씨는 "아기 낳고 경력이 단절된 지 7년째인데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쪽지가 왔다"며 "누구는 수천만원을 벌었고 누구는 빚을 다 갚았다는 후기들이 많아 순간 훅했다"고 전했다.

■"계좌 지급정지로 추가 피해 막아야"

지난 6~7월부터 시작된 피해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기준 전국적으로 경찰에 접수된 관련 피해 사례는 30여건으로 집계됐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인천, 경기, 경북 등 전국 각지에서 피해 신고가 접수됐으며, 피해금액도 30만원부터 4000만원까지 다양했다.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이트는 대부분 가짜 도박사이트로,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과 주소를 수시로 바꾸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접 가짜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이들도 있고, 가짜 사이트를 이용해 사기 행각만 벌인 이들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트 일부는 동일한 곳이지만 대체로 모두 다른 사이트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사건별로 피해자 접촉 경로와 계좌번호가 달라 동일한 피의자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과는 달리 계좌 지급정지 조치가 되지 않아 추가 피해가 이어진다고 성토했다.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의 경우에만 사기 이용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가 가능하다. 수사기관에서 요청하면 지급정지가 가능하지만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하고 있어 먹튀 도박사이트 투자사기는 사실상 포함되지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경우는 신종 범죄여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며 "먹튀 도박사이트 투자사기의 경우 현행법상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되도록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은행 측과 협의해보겠다"고 전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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