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레저]

산을 품은 호수, 세량제 내 안의 고요와 마주치다

가을의 길목 전남 화순을 가다
김삿갓이 사랑한 화순적벽, 배롱나무 손짓하는 몰염정

뾰족하게 서 있는 삼나무가 고요한 물에 반영된 세량제 풍경은 마치 북유럽의 한 호숫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줄 정도로 이국적이다.사진=조용철 기자
여기, 세량제가 있다. 봄이면 분홍빛 벚꽃 앞을 입고, 여름이면 초록이 무성하다. 곧 가을, 단풍드는 계절엔 사진사들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물안개 속에서 절정의 순간을 담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리곤 겨울, 눈속에 파묻힌 호숫가는 또 어떠한가. 고요 속에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세상살이 조금은 지쳤다면, 화순여행이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 화순(전남)=조용철 기자】 "네 다리 소나무 소반에 한 그릇의 죽/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그렇다고 주인은 무안해하지를 말게/나는 청산이 거꾸로 물에 비치는 것을 사랑하니…"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은 작품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전남 화순 동복에서 보내며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화순적벽은 김삿갓이 방랑을 멈추고 머무를 정도로 천하절경을 자랑한다.

'화순적벽'이라는 지명은 1519년 이곳에 유배됐던 조선 전기 문신 신재 최산두가 적벽의 절경을 바라본 뒤 양쯔강의 적벽에 버금갈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천 임억령은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고도 했다. 동북댐 상류에서부터 약 7㎞ 구간에 형성된 물염.창랑.보산적벽과 이른바 '노루목적벽'으로 유명한 장항적벽 등 4곳을 합쳐 화순적벽이라고 하며 지난 2월 국가지정 명승 112호로 지정됐다.

동북댐 상류부터 7㎞ 구간에 형성돼 있는 창랑적벽의 풍경. 사진=조용철 기자
■중국 양쯔강 적벽 못지 않구나, 화순적벽

적벽(赤壁)은 말 그대로 '붉은 벽'이다. 적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극찬했다는 양쯔강의 적벽이다. 국내에도 전북 부안, 충남 금산, 전남 화순 적벽이 유명하다. 그중에서 으뜸은 화순적벽이다. 옹성산 자락이 동복천 물길과 만나는 지역에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 등 네 개의 적벽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길이만 무려 7㎞로 일반적으로 화순적벽이라고 하면 주로 노루목적벽을 일컫는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언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 일정 시간에만 만날 수 있다. 적벽투어 가운데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누루목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망향정이다. 상수원보호구역 초소에서 미리 예약한 투어버스를 타고 5㎞에 이르는 산길을 굽이굽이 지나면 확 트인 시야와 함께 호수처럼 잔잔한 동복호가 모습을 내비친다. 노루목적벽 맞은편에 위치한 보산적벽 위 구릉엔 망향정이 고요히 여행객을 맞이한다. 망향정은 댐 건설 후 물에 잠긴 월평마을 등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다.

망향정을 찾은 관광객들이 마루 끝에 앉아 노루목적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노루목적벽은 지난 1968년 동북댐 1차 물막이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인근 15개 마을 주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다니던 곳이었다. 물막이 공사 전엔 절벽 높이만 90m가량에 길이는 어림잡아 200m로 웅장함을 뽐냈다고 한다. 하지만 1985년 동북댐이 완공되면서 노루목적벽의 30% 정도가 물에 잠겼다. 비록 수몰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30년 가까이 사람의 왕래를 제한한 덕분에 화순적벽의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보존됐다. 현재 적벽 높이는 60~70m가량 되며 가을 단풍철엔 붉은 절벽과 함께 다양한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지면서 절경을 뽐낸다.

지난 1969년 축조된 세량제는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햇빛이 비추면 호수에 담겨진 풍경이 장관이다. 삼나무와 신록이 그려낸 세량제의 이른 아침 풍경은 마치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낭만적이다. 뾰족하게 서 있는 삼나무가 고요한 물에 반영된 풍경은 마치 북유럽의 한 호숫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줄 정도로 이국적이다.

■물안개에 비친 햇빛이 영롱한 세량제

세량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께 화순군이 이곳에 공원묘지를 조성하려고 하자 네티즌들이 공원묘지 조성을 반대하면서부터다. 세량제 주변 산등성이의 대형 송전탑과 전깃줄 등이 풍경에 방해가 되긴 하지만 삼나무와 미동 없는 호수 등이 빚어내는 풍경은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독특한 그림을 제공한다. 세량제는 해마다 봄철이면 산벚꽃과 삼나무, 물안개가 어우러지면서 선경이 펼쳐진다. 경북 청송 주산지에 비견되는 세량제는 아름다움으로는 단 반 발짝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산벚꽃 필 때면 세량제로 들어가는 고샅길은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북적인다. 수백명의 사진작가들이 제방 위에 늘어선 풍경 자체도 볼거리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차량 탓에 근처 경찰관들도 새벽부터 교통정리를 하느라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임대정은 늦여름에 피어있는 배롱나무 꽃만으로도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사진=조용철 기자
■배롱나무 꽃 가득한 물염정.임대정

보통 양반집에서 많이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그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목백일홍'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살짝 가지에 손을 대도 온몸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간지럼을 잘 타는 여자와 같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린다. 화순에는 어딜가든지 배롱나무가 많다. 산이나 들은 물론 정자에도 배롱나무가 지천이다.

물염적벽의 물염정에도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정자 안에는 김인후, 이식, 권필 등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은 시문이 붙어 있다.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세운 정자로 '물염(勿染)'은 세상의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없이 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풍파에 고단했던 마음과 몸도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초가을 하늘보다 더 찬란했던 세월의 뭉클함이 배어난다.

1862년 조선 철종 당시 문신인 사애 민주현 선생이 조성했다는 사평리 상사마을의 임대정은 한여름 연꽃이 활짝 폈을 때가 제일 아름답지만 늦여름에 피어있는 배롱나무 꽃만으로도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산책로 끝에 자리잡고 있는 연못에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이 떨어지면서 임대정을 대표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화순에는 임대정과 짝을 이룰 만한 정자가 또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뜻밖에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환산정이다. '환산(環山)'이란 이름대로 정자로 들어가는 오솔길만 남겨두고 물 위에 떠있는 섬처럼 남았다.

숲길을 걷고 싶다면 백아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백아산자연휴양림을 거닐어보자. 통나무집, 세미나실, 잔디광장 등을 두루 갖춰 아늑한 숲속의 하룻밤부터 모임까지 즐길 수 있다.
흰 바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백아산 산행도 권한다. 접근성이 특히 좋은 한천자연휴양림은 천운산(601m) 자락 울창한 숲 속에 있다. 산이 그다지 높지 않아 산행도 부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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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매운탕
다슬기전


yccho@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