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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美 가계소득 상승의 이면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5 19:56

수정 2017.09.15 19:56

[월드리포트] 美 가계소득 상승의 이면


미국 근로자들에게 오랜만에 반가운 뉴스가 들려왔다. 1999년 이후 두 번의 경기침체와 주택시장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이들의 주머니 사정이 마침내 1999년 수준, 그 이상으로 회복됐다는 소식이다.

미 인구통계국이 지난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미국 가계 중위소득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위소득이란 전체 가계를 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소득을 말한다.

지난해 미 가계 중위소득은 전년보다 3.2% 증가한 5만9039달러(약 6687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종전 사상 최고치였던 1999년 당시의 5만8655달러(약 6643만원)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빈곤율도 12.7%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인 비율도 역대 최저인 8.8%를 기록했다.

이는 긴 경기침체로 상처 입은 중산층과 그 이하 소득계층에 희망을 주는 소식이라고 미 언론들은 환호했다. 동시에 이 같은 상승세가 계속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불안감도 자리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중위소득이 오른 이유는 정규직 근로자 증가 때문이지 임금상승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정규직 근로자는 전년보다 220만명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은 0.5%에 그쳤다. 임금상승이 동반되지 않는 중위소득 증가는 모멘텀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사실도 이번 뉴스를 희망적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지난해 미 가계 중위소득이 3.2% 증가한 반면 평균소득은 이보다 높은 3.6% 증가세를 보였다. 평균소득은 전체 소득을 가계 수로 나눈 값이다. 평균소득은 소득 수준이 특히 높거나 낮은 가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평균소득이 중위소득보다 더 높은 증가속도를 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의미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평균소득은 소득 상위 20% 계층에서 10% 이상 상승했다. 소득 상위 5% 계층의 평균소득 상승률은 12.8%에 달했다. 반면 소득 하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은 3.2% 줄었다.

이처럼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현재 미 의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개혁안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당은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할 세제개편안에 상속세 폐지와 지방세 공제 확대 등 부유층에 유리한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부유층이 세제개편으로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을 것"이라며 부자 감세 의혹을 전면 반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이번 세제개편안이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을 위한 것이라며 의회 협조를 요청 중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경제성장과 중산층 부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펴면서 구체적인 세제지원 방안은 밝히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달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산층에 세제혜택을 주기 위해 부자들의 세 부담을 늘리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소득불평등 심화로 허덕이는 중산층, 미국 노동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세제개편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가 말한 대로 중산층을 위한 세제개편안이 될지, 부자 감세가 주를 이룰지 말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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