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文대통령의 유쾌한 연차소진 실험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8 17:03

수정 2017.09.18 17:03

[기자수첩] 文대통령의 유쾌한 연차소진 실험

문득, 대통령에 대한 한 가지 아주 기초적인 의문이 생겼다.

지난 며칠간 몇 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은 엄청난 일중독자이면서 왜 그렇게 '남들 휴가'를 강조하느냐는 얘기였다.

문 대통령의 '치아 소실'은 일중독의 상징이다. 다른 말로는 격무와 중압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엔 치아에 솜뭉치를 물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대통령 입장문을 직접 수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잠깐이라도 '틈'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해외출장 역시 빽빽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지고 세간의 비난에 시달렸으니 아이러니한 장면이긴 하다.

대통령은 '주어진 연차휴가'는 모두 소진하겠다는 각오다. 이번엔 청와대 직원들의 연차 소진도 독려하는 분위기다. 연차 미소진 직원에게는 인사평가에 불이익을 줘 연말 상여금까지 깎을 태세다. 연가보상제도 없앨 분위기다. 과거 어떤 대통령은 야심한 시간,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수석급 참모(차관급)가 전화를 제깍 받는 걸 그렇게 좋아라 했다고 한다. 그걸 잘 못한 참모는 끝내 해당 부처 차관으로 영전하지 못했다.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게 청와대 일상이다.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는 한 참모는 이런 얘길 들려줬다. "법에 정해진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상 정해진 규정을 최소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었다. 노동.인권변호사로 살아온 대통령의 배경을 생각하면 짐짓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대통령부터 '티나게' 연가 소진에 모범을 보이겠으니 공무원은 물론 일반 국민도 눈치보지 말고 연가를 쓰라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는 필요없다. 그냥 법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인 평균 연차휴가는 대략 14.2일이지만 그중 실제 사용하는 날짜는 8.6일(60%)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평균 휴가일수가 20.6일, 휴가 사용률 70% 이상인 것과 비교된다. 연차 미소진 이유 열 중 네다섯은 직장 내 분위기, 상사의 눈치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 잘하는 것'과 '일 많이 하는 것'이 동의어였던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달아났을까. 법과 관행,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대통령의 연차 소진실험은 계속돼야 하고,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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