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시를 읽는 아침

지령 5000호 이벤트
호주머니에 시집을 꽂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20대 문청(문학청년) 시절 이야기다. 어머니 말마따나 시가 밥 먹여주진 않지만, 세상을 꼭 밥만으로 사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철없게도, 시로 (혹은 소설로) 밥 벌어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나 시는 쉬이 밥이 되지 않았다. 재주가 없어 멋진 시를 짓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운좋게 시인이 되었다 한들 시로 밥을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 때문에 괴롭다고 썼는데, 나는 씌어지지 않는 시 때문에 하고한 날 머리를 싸맸다. 그러다 어찌어찌 직장을 얻어 사회에 나왔고, 시를 쓰거나 읽는 시간은 그 세월의 부피만큼 줄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엔가 전혀 시를 읽지 않는 시간이 왔다. 대략 마흔을 전후한 시기가 아니겠나 싶은데, 그 이후론 단 한 권의 시집도 사지 않았고, 단 한 줄의 시도 읽지 않았다. 그 10년의 세월은 시가 쌀 한 톨, 동전 한 닢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아가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십줄을 넘긴 요즘, 무슨 연유에선지 띄엄띄엄 시를 읽는다. 적극적인 독서라기보다는 그냥 쉬어가는 느낌으로 후루룩 읽어보는 수준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꼭 한 권의 책으로 묶인 시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보내주는 오래된 시 한 줄이나, 매일 아침 조간신문에 한 토막씩 실리는 짧은 시와 해설을 읽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다.

'흥관군원(興觀群怨)'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불러일으킬 수 있고,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 짓게 만들고, 원망할 수 있게 한다(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의역하자면, 시란 스스로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興),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하며(觀),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알게 하고(群), 사무친 감정을 풀어헤칠 수 있게 한다(怨)는 얘기다. 이른바 '시의 효용'이다.

하지만 시가 꼭 무슨 쓸모가 있어야 할 까닭은 없다. 읽는 것 자체로 즐거우면 그것으로 족하다. '무목적의 목적'이라든가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말로 시를 설명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빈 그릇의 텅 빈 공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릇에 무엇인가를 소담스럽게 담아내기 위해선 필히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 그릇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만물은 유에서 생기지만, 그 유는 무릇 무에서 생겨난다(天下萬物生於有,有生於無)"는 노자 '도덕경'의 문구가 새삼 실감나는 아침이다.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