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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유엔무대 데뷔] 평화적 해결 강조…군사옵션 거론 트럼프에 ‘견제구’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9 17:32

수정 2017.09.19 17:32

文대통령, 뉴욕 첫 메시지로 ‘중재’ 요청한 배경은
국제사회 대한 여론전.. 유엔에 대화 중재 첫 요청.. 獨.佛 등도 적극 중재의사
유엔 중재 방식 어떻게.. 총장이 北인사 만날 가능성.. 특사파견은 美 반대가 문제
[文대통령, 유엔무대 데뷔] 평화적 해결 강조…군사옵션 거론 트럼프에 ‘견제구’

【 뉴욕(미국).서울=조은효 박소연 기자】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 사무총장의 대화 중재 노력에 한국 정부가 적극 호응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유엔에 대화 중재를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너도나도 한반도 문제에 '이란식 해법'(핵동결을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적용해보겠다며 북핵문제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설 때마다 "원론적 수준의 얘기 아니겠느냐"고 선을 그었던 청와대가 이번엔 유엔에 중재해달라고 역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중재 논의'는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성을 틈틈이 흘리며 대북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일 연대로선 결코 달가운 제의가 아니다. 오히려 대북제재 흐름에 역행한다며 반발할 수 있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중재 카드는 어디까지나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부분을 감내하면서까지 왜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첫 일성으로 중재 카드를 던졌을까. 원론적이든, 외교적 수사든 한국의 대통령이 중재를 요청함에 따라 한반도 주변국인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또 유럽의 맹주를 자처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역시 계산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전쟁 방지 '여론전'

문 대통령이 '정식으로'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중재를 요청한 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펼치는 '여론전'이란 측면이 강하다.

이날 문 대통령은 중재 논의에 앞서 "북핵문제는 평화적, 근원적으로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문제 해결 방식과 목표, 시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3대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서두에 '평화적 방식'을 배치했다는 건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북제재와 압박이 우발적 무력충돌이나 군사적 옵션으로 비화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심심치 않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카드를 거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견제구이기도 하다.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쟁은 '설마' 하는 인식이 강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복적인 군사카드 넣었다 빼기 작전이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국제신용평가사 중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교적 중립적 입장에서 평가해왔던 무디스가 이달 초 북한과 한.미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Aa2(안정적)'인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중재, 곧 대화 논의가 활발해질수록 전쟁 불가론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선 이 점을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獨.佛 등 중재 자처 왜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유럽 내에서 심심치 않게 중재 의사를 타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위스 도리스 로이타르트 대통령과 벨기에 디디에 레인더스 외교부 장관 등은 공개적으로 "중재국으로 역할과 훌륭한 봉사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이 이런 자신감을 내비치는 배경엔 13년 만에 타결된 이란 핵협상 경험이 크다.

유럽의 맹주를 자처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란 핵협상 성과를 제시하며 "유럽, 특히 독일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경쟁적으로 "프랑스는 평양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엔차원 중재 어떻게

유엔 차원의 중재는 대북특사 파견이나 사무총장이 직접 북한 인사를 만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대북 제재.대화 병행 기조를 가진 문재인정부가 제재에 중지를 모으고 있는 유엔을 대화의 통로로 택한 것은 아주 세련된 방식"이라면서 "공식적으로 제안을 받은만큼 쿠테흐스 사무총장도 이를 단순 정치적 메시지로 넘기지 않고 무겁게 받아들여 실제 중재 시도로 이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교가에선 이번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면담 결과를 주목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대화 중재에 나선 경우는 많으나 성공에 이른 경우는 많지 않다. 유엔 차원에서 특사를 파견하려면 당사국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찬성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를 강조하는 중·러 입장에선 중재론에 힘을 실을 수 있지만, 미국으로선 반대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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