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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토이저러스의 몰락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0 16:55

수정 2017.09.20 16:55

16년 전 미국 대학 연수 중에 가족과 뉴욕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완구전문점 토이저러스 매장. 당시에는 그곳이 뉴욕 관광객의 필수 방문코스로 통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18m 높이의 실내 대관람차와 9m짜리 대형 공룡 모형이 여섯 살짜리 딸아이의 혼을 빼놓았다. 아이는 끝도 없이 늘어선 바비인형과 공룡 모형들을 고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내 지갑은 탈탈 털렸다. 하지만 토이저러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타임스스퀘어 매장은 2015년 말 문을 닫았다.
판매부진 때문이었다.

동심의 고향으로 통했던 토이저러스는 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이 한창이던 1948년 25세의 찰스 라저러스가 미국 워싱턴DC에 아기용품점을 열면서 시작됐다. 라저러스는 장난감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해 1957년 메릴랜드주 록빌에 토이저러스 1호 매장을 열었다. 그것은 '장난감으로 가득 찬 슈퍼마켓'이었다. 토이저러스는 1980년대 놀이공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매장과 저렴한 가격, 다양한 상품구성을 무기로 수백개 매장을 열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토이저러스는 1990년대 월마트, 타깃 등 대형마트들이 장난감 할인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경영난에 시달려온 토이저러스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우리의 법정관리와 유사)를 신청했다. 세계 38개국에 1600여개 매장을 운영해온 토이저러스의 몰락은 유통의 대세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토이저러스는 2000년 유통 공룡 아마존에 온라인 판매를 맡겼다. 이후 아마존과의 갈등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2006년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열었지만 혁신의 시기를 놓쳤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 게임이 소비자의 장난감이 돼버렸다. 게다가 오프라인 장난감 시장은 아마존이 장악했고, 토이저러스는 설 땅이 없어졌다.


애플의 스마트폰 혁명에 밀린 피처폰 왕국 노키아는 순식간에 망했다. 업계 1위 자리에 안주해 디지털 혁신을 게을리 한 가전업체 소니, 세탁기업체 월풀 등이 밀려났다.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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