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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양적완화의 종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1 17:11

수정 2017.09.21 17:11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집무실 컴퓨터 옆에 작은 카드를 두고 일했다. 거기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말이 적혀 있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의회는 링컨의 군사적 실책을 매섭게 비판했다. 링컨은 이렇게 대꾸했다. "나에 대한 그 모든 비판을 읽으려고 애쓰다간 답변은 고사하고 차라리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버냉키 의장(재임 2006~2014년)도 갖은 비판에 시달렸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렸을 땐 비교적 조용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이른바 양적완화(QE) 정책을 펴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공화당 보수파 정치인들은 시장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가 언젠가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 경제학자들과 시사평론가, 자산매니저들은 월스트리트저널지에 실은 공개서한에서 양적완화가 초래할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연준 내 매파들은 심지어 양적완화를 '악마와의 거래'에 비유했다.

버냉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을 전공한 경제학자다. 당시 연준이 저지른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고, 양적완화를 밀어붙였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세계 경제는 대공황과 같은 파국을 면했다. 걱정하던 인플레이션이나 자산거품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조달러를 시장에 뿌렸지만 미국 달러화의 힘은 건재하다.

버냉키는 자만을 경계했다. 대공황 때 연준은 섣부른 긴축으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1937~1938년 침체가 실제 사례다. 2000년대 이후 일본판 양적완화도 반면교사로 삼았다. 냉.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죽도 밥도 안 된 케이스다. 그 대신 버냉키와 후임 재닛 옐런 의장은 긴 안목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곧 선제안내 전략을 통해 시장이 정책 변화에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줬다.

연준은 2015년 말 제로금리를 풀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엔 보유자산 축소 결정을 내렸다.
양적완화와 반대로 시장에서 돈을 거둬들이겠단 뜻이다. 시장은 꿈쩍도 안 했다.
짐작한 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의 '행동하는 용기'(자서전 제목) 덕에 세계경제가 한시름 덜었다면 과찬일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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