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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우리시대의 대통령

심형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1 17:11

수정 2017.09.21 17:11

[차장칼럼] 우리시대의 대통령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우리에겐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많은 개혁정책은 초기에는 입법화로 빛을 본 것이 거의 없었다. 뉴딜정책이 빛을 본 건 정작 2차 세계대전 발발 때부터였다. 전 세계 전선에 막대한 군수물자 수출길이 열린 뒤였다. 전후에는 유럽 재건에 참여하면서 대공황의 그림자에서도 벗어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산업화의 빛나는 업적이 5개년 계획의 단 5년 동안 이뤄진 성과는 아니었다.
경제발전의 효과를 가져온 것은 베트남전쟁 특수였다.

성공한 대통령은 대부분 국가적 운명이 걸린 위기상황에서 나왔다. 자신이 평소에 갈고 닦아온 능력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능력이 출중해도 시대정신이나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대부분 지도자들은 성공보다 실패하지 않는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물론 성공이라는 감투 대신 국가의 이익을 택한 리더도 있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는 좌파 사회민주당 출신이었지만 총리직을 걸고 우파정책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다. '유럽의 환자'로 불린 독일의 개혁을 위해서였다. 개혁은 선거 패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덕분에 오늘날 독일은 유럽의 맹주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대 우리 대통령들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고 욕심을 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하려는 패러다임과 강박관념, 조급증만 있었다. 우리 대통령제는 내각제 요소가 절충된 형태다. 다른 대통령제 국가에 비해 의회의 견제가 강한 반면 의회 해산권한도 없다.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크지 않다. 5년 단임제도 장애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무엇 하나 할 수 있는가. 권력은 분산되어 있고, 대통령은 제도에 묶여 있다. 뭘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고 다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이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을 무시한 결과였다. 인사권 남용, 여당에 대한 공천권 전횡이 가능한 때였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의 권위는 더 추락했다. 출범 넉달째를 맞은 문재인정부도 성공 딜레마에 빠져 있다.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탈원전, 수능 절대평가, 통신료 인하 등 주요 정책은 표류 중이다.
인사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본회의 표결이 부결되면서 여소야대 의석수 한계도 실감했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함성득 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에서 "(박근혜 시대 이후) 대통령들은 성공한 대통령보다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cerju@fnnews.com 심형준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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