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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왜곡된 자금흐름이 문제다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4 16:40

수정 2017.09.24 16:40

시중자금 부동산에만 몰려.. 기업이 돈 쓰도록 유도해야
돈이 돌지 않는다.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시중에 풍부한 자금이 풀려 있지만 기업으로 향하는 자금 물꼬가 닫혀 있다. 이로 인해 시중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넘치는 자금이 부동산시장에 흘러들어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가계빚 급증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돈맥 경화 현상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시중은행의 예금회전율 등이 모두 바닥 수준이다.
통화가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유통속도는 지난해 4.4분기에 0.6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 2.4분기 예금회전율(3.7회)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시중은행의 통화 창출 기능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도 매우 저조했다.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자금흐름 관련 지표들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한은은 경기회복을 위해 돈을 많이 찍어내고 있지만 그 돈이 활발히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시중은행에 잠겨 있는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돈을 안 쓰기 때문이다. 신용도를 갖춘 대기업들은 돈을 빌리지 않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돈을 빌리고 싶어도 못 빌리는 실정이다.

반면 예금취급기관이 가계에 빌려준 대출금 잔액은 지난 1년 동안 82조원이나 늘어 기업 대출금 잔액 증가액(45조원)의 거의 두배에 달했다. 2.4분기 현재 은행이 가계에 빌려준 대출금의 71%가 주택담보대출일 만큼 부동산 쏠림 현상이 극심하다. 국제결제은행(BIS)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1.4분기 93%로 1년 전보다 4.6%포인트 높아졌다. 상승폭이 조사대상 43개국 중 중국(5.5%포인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자금흐름의 왜곡이 심각하다. 풍부한 시중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으로 향하는 자금 물꼬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은행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거나 신규 사업에 나설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 결과 갈 곳 잃은 자금이 부동산시장에 흘러들어 집값 상승과 가계빚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종합적인 자금흐름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
저성장, 청년실업, 부동산투기, 가계빚 등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난제들은 모두 자금흐름의 문제, 더 본질적으로는 기업의 의욕부진과 연관돼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자금흐름 개선 대책에는 기업의 사기와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야 한다.
생산과 고용의 주체인 기업을 적대시하면서 경제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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