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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수다 떨며 힐링하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7 17:25

수정 2017.09.27 17:25

[fn논단] 수다 떨며 힐링하기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국 시인의 시 '있는 힘을 다해' 끝 구절이다. '해가 지는 데/왜가리 한 마리/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 데/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가끔 있는 힘을 다해/물 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 삶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한 다리로 꼼짝 않고 서서 물 속의 고기를 응시한다. 이때다 싶으면 그야말로 전속력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머릴 처박는다.
그래도 성공률은 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 인생살이도 결코 만만치 않다. 매일 아등바등 바쁘게 살다보면 피곤하고 잠도 부족하다. 운동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능률도 떨어진다. 현대인의 정신적 병리현상이다. 이렇게 삶이 힘겨울 때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요즘 화두는 단연 힐링(healing)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처방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힐링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힐링여행, 힐링음악, 힐링독서, 힐링캠프, 바디힐링 등등 가히 힐링 홍수 시대다. 그런데 조물주는 인간에게 스트레스도 주지만 동시에 이를 치유할 수 있는 힐링 처방전도 준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하는 수다가 그것이다.

우리는 수다를 떨며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위안을 받는다. 내 고민을 툭 털어놓고 가슴에 맺힌 울분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속이 후련해진다. 힐링이 된 것이다. 애정을 가지고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가족, 친구가 그래서 더욱 소중한 존재다. 점심시간 식당 광경을 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설득하려면 상대방 얘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하지 않는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수다 떠는 시간을 많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칼럼니스트 도로시 딕스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하는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은 법이다'라고 했다. 남 얘기 듣기가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격언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상대방이 수다를 떨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나의 우군이 된다.


행복의 조건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어떨 때 즐거움을 느낄까.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수다 떨 때, 음악을 들을 때, 산보할 때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수다를 떤다는 것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힐링 처방 비법이니 어찌 이를 나무라겠는가. 마음껏 수다를 떨어보자. 치이고 상처 받은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면 얘기를 잘 들어주자. 이것이 결국 내 스스로도 힐링이 되는 방법이지 않을까.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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