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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안보위기, 답답한 한반도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9 17:16

수정 2017.09.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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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안보위기, 답답한 한반도

이제 미국과 북한 간 이보다 더 심한 막말이 오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양측의 행동대결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한국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트럼프의 원색적 비난에 대한 김정은.리용호가 받아친 '멍군타령'이 훨씬 강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지금 어린 김정은에게 망신 당한 격이 됐다. 미국 건국 이래 미 대통령이 이런 수모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 트럼프 체면은 지금 말이 아니다.
그는 이 구겨진 체면을 펴보려고 B-1B 전략폭격기 2대를 띄워 북한 공해상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그게 별것 아니라는 것쯤은 한반도는 다 알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이 '죽음의 백조'를 날려보낸 것만도 여섯번째다. 횟수가 거듭됐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발이 떨어졌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이제 북한도 미국의 대북 시위에 불감증에 걸려 있을 법하다.

이런 말폭탄 속에 골병드는 건 대한민국일 뿐이다. 사드배치가 끝났지만 북한의 도발이 상존해 있고, 중국으로부터는 경제제재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가 끝이면 얼마나 좋으랴. 동맹국인 미국에 툭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압력을 받더니 이번에는 무기구매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간 원색적 비난전에 따른 대가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이 치르는 셈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금 미국은 이 틈을 타 우리에게 핵추진잠수함이나 F-22.F-35B 스텔스 전투기, '죽음의 백조' B-1B 전략폭격기 등의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다음달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한다고 한다. 지금 한반도 상황을 놓고 우리는 미.중에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다. 이 땅이 마치 자기네들 속국쯤으로 아는 모양새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유엔 대북제재결의 통과만 해도 그렇다. 여기에서 미국은 강대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드 반대를 외치니까 한·미 FTA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김정은의 불장난에는 실제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제제재만 있었을 뿐 실효적이고 강력한 대북 응징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를 향해 미국 전략자산 무기 구매가격을 높이는 셈법이었고, 이를 위해 말폭탄 강도를 높여 긴장을 한층 고조시켜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트럼프와 미국의 이런 전략 앞에 우리는 이제 핵잠수함, 전략 전투.폭격기를 도입하지 않을 방도가 없게 됐다. 국민적 부담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미국이 북한 도발에 앞서 미국이 갖고 있는 군사 전략자산을 이용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전략폭격기 대여섯번 출격시켰다고 놀랄 그들이 아닌 것 같다. 그들도 겁주기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 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을 제대로 응징하려면 최소한 대형 항공모함 2척을 한반도에 배치시켜 놓고 이를 통해 유사시 초토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줬다면 북한이 사태 인식을 제대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는 지금 김정은에게, 트럼프에게, 중국에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트럼프는 북한에 말폭탄을 투하하고 속으로는 우리를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정은은 이참에 우리를 제쳐놓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말폭탄 전쟁을 벌이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국은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현실이다.
이런 때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면 답답한 가슴은 더욱 죄어 온다.

dikim@fnnews.com 김두일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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