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 경제혁신의 계기로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08 16:33

수정 2017.10.08 16:33

[차관칼럼]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 경제혁신의 계기로

스페인 무적함대가 1588년 칼레 해전에서 영국 해군에게 패한 것을 계기로 16세기 최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은 해상무역의 패권을 영국에 내주었고 점차 국운이 기울어갔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까.

첫째, 당시 스페인에 비해 약소국이던 영국은 주철대포와 해군 중심이라는 전략을 과감히 채택한 데 기인한다. 주철은 청동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고열과 압력에 약해 대포의 재료로 적당하지 않았다. 영국은 지속적 기술개량을 통해 주철대포의 약점을 보완했고, 적은 부담으로 다수의 대포를 보유할 수 있었다. 반면 스페인은 육군 보병 위주의 운용과 고가의 청동대포를 버리지 못했다.

둘째, 당시 신대륙으로부터 금과 은 수입이 줄면서 스페인의 국가재정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지출을 줄이지 못하고 계속 국채를 발행한 당연한 귀결이다.

혹자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재정을 담당하는 관료로서 당시 스페인이 여건 변화를 고려해 기술개발과 해군에 재정투자를 늘리는 재정혁신을 추진하며, 우선순위를 고려해 구조조정을 추진해 건전성을 유지했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가 저성장 고착화와 양극화 심화라는 구조적·복합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사람 중심의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물적 투자에서 일자리, 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로 전환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혁신성장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을 올해 대비 7.1% 증가시키고, 향후 5년간 재정지출을 연평균 5.8%로 설정해 같은 기간 경상성장률 전망치(연평균 4.8%)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 선제적인 투자를 하려고 한다. 이러한 적극적 재정운용은 재정건전성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사업을 우선순위에 따라 구조조정하는 노력과 함께 가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을 준비하며 11조5000억원의 지출을 구조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5년간 총 62조7000억원의 구조조정 목표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과거와 달리 재정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정책목적 달성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질적인 차원에서 재정사업 전반을 점검해보는 지출구조 혁신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종전에 재정투자로만 정책을 수행하던 것을 규제, 금융, 세제 등의 수단을 같이 놓고 가장 효과적인 정책목표 달성 조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사업구조 개편방안을 모색한다. 한계기업을 반복적으로 계속 지원하는 불합리한 지원구조를 탈피해 지원 졸업제를 도입하거나 직접지원보다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보상체계의 혁신도 검토할 것이다. 또한 재정지원의 전달 단계를 축소하거나 수혜자의 관점에서 만족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전달체계 개선도 추진한다.

지난 경험을 뒤돌아보면 양적·질적 지출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그 취지가 퇴색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러 정부부처,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가 대승적 견지에서 양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재정당국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한 지출구조 혁신이 공공부문의 생산성을 높이고 우리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