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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지금 거래소에 필요한 것은?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0 17:11

수정 2017.10.10 17:11

[차장칼럼] 지금 거래소에 필요한 것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공동저서 '넛지(Nudge)'가 서점가에서 동이 날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한 온라인서점 집계에 따르면 평소 하루에 20권 정도 나가던 것이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300권 넘게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넛지'는 꽤 오래 전 한참 동안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책이다. 2008년 출간된 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휴가 때 읽고나서 측근들에게 선물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너도 나도 사서 보곤 했다. 세일러 교수는 주류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넛지' 덕분에 우리나라 독서가들에게도 꽤 친숙한 편이다.

'넛지'의 국내판 표지 상단에는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이 한 줄로 요약된다.


'넛지'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경제학 이론은 정교하고 심오하지만 인간들의 오판이 종종 이론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얘기에 공감을 안할 수가 없다. 이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실천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세일러 교수는 책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넛지'를 제안한다. '옆구리를 쿡 찌르다'는 뜻인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때론 옆에서 슬그머니 미는 것처럼 온건하고 소극적인 개입이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넛지효과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적용되는 사례는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다. 남자들이라면 하얀색 변기 아래에 그려진(처음 봤을 때는 진짜 파리인 줄 알았다) 파리를 맞히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정조준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별거 아닌 아이디어지만 그 어떤 경고문구보다 큰 효과를 발휘한 사례다.

요즘 한국거래소 신임이사장 공개모집이 진행되고 있다. 관료 출신, 내부 출신 등등 어느 때보다도 쟁쟁한 후보들이 공모에 지원해 좀처럼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까지 거래소 이사장은 꽃보직이라고 불린다. 주가는 시장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정책은 금융당국에서 지시하니까 중간에 끼인 거래소 입장에서 무엇인가 나서서 할 권한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실적 부담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즘 주식시장을 보면 이젠 옛말이 될 듯하다. 코스닥의 대형종목들이 코스피로 짐을 싸서 이사 가는 엑소더스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스타트업들을 키워보겠다고 만든 코넥스시장은 아직까지 구색 맞추기 수준이고, 상장지수펀드(ETF) 침체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누가 이사장이 되든 이번에는 편안히 임기만 보내다 가긴 어려워 보인다.
쌓인 문제가 많아서다. 직접 나서서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옆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옆구리를 툭 찔러주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신임이사장에게 세일러 교수가 책에서 얘기한 것 같은 '넛지'가 필요한 때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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