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데이터 전쟁이 시작됐다

자주 가는 콩나물국밥 집이 있다. 해장하기에 '딱'이다. 아침 회의 마치고 10시쯤 여느 식당에서는 밥 얻어먹기도 어려운 시간이지만 이 집은 손님대접 해준다. 아침 7시부터 콩나물국밥을 말아주고 오후 3시면 문 닫는다. 해장에 딱 맞는 맛과 간도 갖췄다.

누군지 모르지만 콩나물국밥집 주인장은 일찌감치 여의도 술꾼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정확히 맞춰낸 영업방식과 상품특색을 갖춘 듯하다. 그 덕에 족히 30년 이상 성업 중이다.

며칠 전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안건으로 클라우드산업 규제완화를 요구할 작정이니 우리 정부가 휘둘리면 안 된다는 기사를 썼다. 기사를 쓰면서 많이 고민했다. '데이터는 쌓아두기만 하면 똥 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콩나물국밥 집 주인장처럼 분석하고 가공해 상품개발의 근거로 써야 데이터는 가치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데이터를 국내에 가둬두라고 기사를 쓰려니 영 명분이 안 선다.

클라우드산업은 수많은 데이터를 여러 대의 서버에 나눠 저장해 뒀다가 자격 인증을 받은 사람에게 데이터를 조합해 분석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돈을 버는 사업이다. 클라우드산업의 핵심은 데이터 수집과 저장이어서 빅데이터산업과 서로 짝꿍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보호 법률들은 데이터를 보호하는 데만 목적이 있다. 분석하고 가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도록 묶어뒀다.

주민등록번호로 전 국민을 구분하고 의료보험, 금융서비스를 운용하는 우리나라는 사실 디지털로 분석하고 가공할 데이터 천지다. 거의 모든 국민이 교통카드로 교통요금을 결제하니 이동 데이터는 그야말로 황금 데이터다.

그런데 가공할 수 없으니 황금 데이터는 그저 서버 잡아먹는 하마일 뿐이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모든 정부부처의 데이터를 정부 클라우드 서버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부 서버에 있는 데이터는 누가 가공·분석할 수 있을까. 정부가 직접 대형 클라우드사업자가 됐으니 국내에 클라우드산업이라는 게 생길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을 알고 있으니 미국 기업에 황금 데이터를 주면 안 된다고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왜 뜬금없이 클라우드를 FTA 협상 안건으로 내놓은 걸까. 유럽연합(EU)이 내년 시행할 일반개인정보보호규칙(GDPR)은 뭘 노리는 걸까.

데이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기업들은 전 세계 소비자의 취향과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상품으로 내놔야 생존할 수 있다.
자국 기업의 생존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데이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데이터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짰으면 한다. 미국과 유럽이 벌이는 데이터 전쟁을 분석한 전쟁형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