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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이사람] 신예 사진작가 심규동 "고시원도 사람 사는 곳 알리고 싶어"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22 19:21

수정 2017.10.22 22:08

사진집 '고시텔' 로 주목
10개월간 신림동 고시원에 머물며 주변인들을 '주인공'으로 삶의 기록 남겨
[fn이사람] 신예 사진작가 심규동

2015년 12월. 단지 더 싼 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른 끌림이 있을진 몰랐다. 그가 서울 신림동 봉천역 주변 허름한 고시원을 찾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고향인 강릉을 등지고 홀로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에게 1.5평짜리 고시원은 안식처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방값은 18만원이었다. 서울 변두리 고시원 중에서도 싼 축에 속했다.
그만큼 낡고 열악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도망가고 싶었어요. 더럽고 냄새 나고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은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돌아서서 나오는데 '찍고싶다'는 강렬한 끌림이 마음속에서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는 그가 처음으로 자신과 주변을 '주인공'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사진집 '고시텔'(눈빛출판사)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사진작가 심규동씨(29.사진)는 23일 고시원이란 공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돈 없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모여 사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주거공간이라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지내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하던 일도 그만두고 고시원에 들어가 살기로 작정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드는 모습조차 보여주기 어려웠어요. 누가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히고 싶겠어요. 반년 정도 지나고 나니, '사진을 찍느냐' '나 좀 찍어줄 수 있느냐' 이런 반응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어요." 사진작업은 6개월이 지난 시점 급물살을 타면서 '순식간'에 이뤄졌고, 그는 그곳에서 4개월을 더 살았다.
심규동 작가 '고시텔'
심규동 작가 '고시텔'

사진은 최대한 주관을 배제하려고 했다. 천장에 카메라를 매달고 자유롭게 포즈를 취하게 했다. 그 자신도 모델이 돼 6명과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간신히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 세상 다 가진 듯 여유롭게 누워 카메라를 보는 문신을 한 남자. 웅크린 남자 옆으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생활용품들이 경계없이 놓여 있는 모습이 여과없이 공개됐다.

우연한 계기에 사진전문 출판사가 그의 작품을 눈여겨봤고, 전시 기회가 생겼다. 온라인에 사연을 올려 크라우딩펀드를 모금했고 십시일반 모인 돈은 600만원이나 됐다. 그렇게 해서 지난 5월 국회에서 전시를 한 데 이어 오는 11월 3일부터는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에서 열리는 '2017서울사진축제' 단체전에 참여하게 됐다.
심규동 작가 '고시텔'
심규동 작가 '고시텔'

고시원의 삶을 세상에 알렸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봉천역 고시원 사람들은 사연 많은 인생을 안고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고시원으로 갔다고 한다. 그 역시 여전히 고시원에 살고 있으며,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이라고 물었다.

"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고시원이란 곳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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